[기업, 이웃속으로] (8) 이종환 삼영화학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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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전공을 하고 있노?"
지난 10일 서울 소공동에 위치한 삼영화학그룹 본사.국내에서 가장 큰 장학사업을 벌이고 있는 이 회사 이종환 회장(81)의 집무실에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이 회장이 사재를 털어 설립한 관정이종환교육재단의 장학금을 받아 서울대 의과대학원에서 분자영상치료를 연구하고 있는 정우석씨(27)가 감사 인사차 이 회장을 찾은 것.
이 회장은 구두쇠라는 '소문'에 걸맞게 찾아온 손님에 대한 대접도 종이컵 녹차가 전부.툭쏘는 말투에다 방문객의 면면을 유심히 살피는 시선이 서늘했다.
하지만 정씨의 연구내용을 꼼꼼히 묻는 모습에서 미래 한국을 이끌 젊은 인재에 대한 원로 기업인의 애정이 배어났다.
"공부하는데 어려움은 없노?"(이 회장)
"학부때는 아르바이트라도 해서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했는데 대학원에 진학하니 연구실에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어서 여의치가 않습니다.
이번 학기에 주신 장학금 4백만원 덕분에 일단 등록금이라도 해결돼 다행입니다."(정씨)
검소하게 차려진 집무실을 둘러본 정씨가 말을 잇는다.
"솔직히 놀랐습니다.장학금의 규모로 봐서 엄청나게 큰 사업을 하실 줄 알았는데….어려운 결정을 하신데 감사할 뿐입니다."
그룹 계열사의 1년 매출을 다 합쳐봐야 2천억원 남짓.이 회장은 평생 모은 재산(4천억원)을 다 쏟아부은 셈이다.
정씨의 감사에 이 회장은 '장사는 돈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남기는 것'이라는 조선시대 거상 임상옥의 말로 답을 대신했다.
그리곤 30여년전 사업차 방문했던 스위스에서의 단상을 떠올렸다.
"이상했어.'땅도 좁고 자원도 없는 나라 사람들이 왜 이렇게 잘 살까'라는 의문이 떠나질 않았지.오랜 생각 끝에 '답은 사람이다'라는 결론을 내렸어.그 때 '돈을 벌면 사람을 키우는 일을 꼭 해야겠다'고 결심했지."
정씨는 "조건 좋은 장학금을 받았다며 마냥 기뻐만 했던 자신이 부끄럽다"며 "앞으는 저도 가진 걸 베풀면서 살아가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자 이 회장이 손사래를 친다.
"우리가 주는 돈은 어떤 조건도 없어.그냥 하고 싶은 공부 마음껏 해봐."
이 회장은 정씨를 배웅하며 "언젠가 자네가 노벨상을 탔다는 소식을 듣고 싶다"며 정씨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 회장이 사재를 털어 장학재단을 설립한 건 지난 2000년.80평생 모은 돈과 부동산,주식 등을 거의 전부 내놓았다.
현재는 시가 4천2백억원 규모로 순수 장학재단으로는 국내 최대가 됐다.
내년안에 6천억원 규모로 키운다는 게 목표.
국내 장학생은 최고 1천만원,국외 장학생은 5만달러까지 지원한다.
그동안 국내외에서 4천여명의 장학생을 배출했다.
정씨가 떠난후 재단 설립의 이유를 묻는 기자에게 이 회장은 '공수래 공수거(空手來 空手去)'를 역설했다.
"빈손으로 왔다가 사회의 도움으로 제법 거머줘 만수유(滿手有)했으니 이제 사회에 다 내놓고 공수거 하려고."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