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사라진 유통가 연말특수] "한벌이라도 팔아봤으면"

"하루에 한 벌도 못파는 브랜드도 있어요. 날씨가 따뜻하다고는 하지만 너무 심한 것 아니에요?" 19일 오후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8층 모피의류 매장. O모피의 한 판매원은 "겨울 신상품을 내놓은 지 한 달이 지났지만 대부분이 재고로 쌓여 있다"며 도무지 불황의 끝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이날 매장에는 진도 국제 등 4개 브랜드의 판매직원 10여명만 서성일 뿐 주말답지 않게 손님들은 거의 찾기 힘들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유통업계는 연말 '반짝 경기'를 기대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기대에서 실망으로 바뀌는 분위기다. 백화점 재래시장은 물론 음식점 맥주집 등 자영업자까지 '연말특수'는 물건너 갔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다. 더욱이 날씨까지 따뜻해 일부 의류의 경우 겨울 신제품까지 땡처리 준비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재고 땡처리 준비하는 재래시장 주말인 지난 18일 저녁,서울 동대문 주변 도로는 여느 때처럼 인산인해를 이뤘다. 쇼핑객들과 야외무대 관람객들이 뒤섞여 다니기가 불편할 정도였다. 하지만 매장에 들어서는 순간 분위기는 달랐다. 쇼핑객들도 적은데다 쇼핑백을 든 손님을 찾기가 어려웠다. 두타 여성복 매장의 금선화씨는 "날씨가 따뜻하니 두꺼운 겨울 의류가 나가겠느냐"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같은 디자인이면 손님들이 싼 원단의 옷을 집는다며 1만∼2만원짜리 '원가 세일'이 많은 이유를 설명했다. 동대문 도매 상가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특히 날씨가 따뜻한 데다 외상 거래가 많고,반품이 가능하기 때문에 요즘 겨울 점퍼 반품이 수시로 들어온다. APM의 아바하우스 서완교 사장은 "연말 경기라고 부를 만한 게 없다"며 "반품 때문에 재고 부담이 유난히 큰 데다 도매쪽 겨울 장사는 벌써 막바지"라고 말했다. 새벽 도매시장인 청평화에서 여성복을 취급하는 신창철 리치데이 사장은 "올해는 눈 한 번 제대로 안오고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날도 별로 없지 않았느냐"면서 "매장마다 재고가 쌓여 벌써 집집마다 서둘러 '땡처리'에 나섰다"고 전했다. 청평화상가 '리필'의 봉원민 사장은 "올 겨울은 비가 많이 온다는데 옷장사를 접고 우산장사나 해볼까 싶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아이쇼핑만 하는 백화점 연말특수가 물건너간 것은 백화점 할인점도 마찬가지다. 19일 롯데백화점 본점 'FUBU'의 김향숙씨는 "2년 전만 해도 10명이 상품을 보러 오면 8명은 구매해 갔는데 지금은 거꾸로 2명만 구매해 간다"며 썰렁한 매장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연말 매출이 예년보다 30%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9층 디지털 편집매장에서 MP3 플레이어를 판매하는 류인훈씨는 "한 번에 사는 사람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며 "두 번,세 번 매장을 들러 고민하다 사가는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반품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신사정장 파코라반의 경우,1주일에 한두 건 있던 구매취소가 요즘 들어서는 이틀에 한 건은 생긴다고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이날 롯데 본점 9층 '영스타 브랜드 크리스마스 페스티벌' 행사장은 복도 바닥이 훤히 보일 정도로 한산했다. 롯데 본점의 경우,12월에는 평일 기준으로 하루 5천8백여대가 주차하는데 요즘은 5천2백대로 10%가량 줄었다. 장규호·송주희 기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