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개성공단의 벽

"개성산 냄비가 정말 개성에서 만들어진 게 맞습니까." 지난 15일 개성공단의 첫 제품생산을 취재하고 돌아온 기자에게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서울에서 시판된 개성산 냄비가 '사실은 남한에서 만들어진 것'이란 루머도 들려 왔다. 개성공단 공장에서 북한 근로자들의 손으로 제품이 만들어지고 포장돼 수송트럭에 실리는 전 과정을 지켜본 기자의 입장에서는 황당하고 씁쓸한 얘기였다. 이같은 뿌리깊은 불신의 골은 개성공단 현장에서도 느껴졌다.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개성공단 첫 공장가동에 대한 축하와 격려의 말이 쏟아지는 가운데서도 남북간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특히 주동찬 중앙특구지도개발총국장 등 북측 참석인사들은 굳은 표정이었다. 개성공단 진척속도가 당초 계획보다 늦어지고 있는 책임이 전적으로 남측과 미국쪽에 있다는 불만의 표시였다. 반면 전기 등 인프라 공사가 지연되고 있는 이유에 대해 남측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북측 사정' 때문이라고 했다. 공장내 생산현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불편한 점은 없다" "남북이 함께 일하니 너무 좋다" 등 입맞춘 듯한 답변만 하는 북한 근로자들에게 좀더 물어보려고 하면 어김없이 북측 관리자들이 나타나 "조업에 방해가 된다"며 기자를 밀어냈다. 남측 관리자들은 "북측 통제가 심해 효율적 관리가 어렵다" "북한 근로자들이 우리 말은 안듣고 북측 관리자들 말만 듣는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이제 '첫삽을 뜬' 개성공단은 전략물자 반출입,전력 통신 등 인프라,통행 통관절차 등 남북이 함께 협력해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이러한 수많은 과제를 떠올리면서도 현장에서는 무엇보다 남북근로자들이 몸으로 부딪히는 생산현장부터 남북당국,나아가 사회 저변에 깔려있는 상호 불신의 벽을 허무는 노력이 병행되지 않고서는 개성공단의 성공을 기대할 수 없다는 생각부터 절실하게 다가왔다. 송태형 벤처중기부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