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주가조작 추가조사] "치고 빠지기 더는 안된다"

"헤르메스가 이렇게 치고 빠질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헤르메스연금운용이 최근 삼성물산 지분 7백77만주(약 5.0%)를 전격 처분한 데 대해 한 증권사 국제담당 임원은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며 놀라워했다. 운용자산규모가 90조원에 달하는 영국 최대 연기금펀드인 헤르메스가 여느 단타족 못지 않은 행태를 보였기 때문이다. 당시 헤르메스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M&A세력을 지원하겠다고 공표한 지 불과 이틀만에 전격 매도를 단행했다. 전문가들은 '외국자본은 선'이라는 단순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한다. ◆투기자본 한국시장 활개 증권업계에서는 외국계 투기자본에 여러번 당한 뒤에도 중장기펀드여서 괜찮다는 의견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헤르메스의 행태는 외국자본에 대한 인심이 넉넉한 증권가에조차 본질을 다시 한번 생각케 하는 계기가 됐다. 헤르메스는 그나마 괜찮은 측에 속한다. 한솔CSN에 투자한 한 외국인은 지분 8%를 사들여 주가를 띄우더니 지분신고일을 하루 앞두고 7%가량을 일시에 털고 나가는 '치고 빠지기'식으로 시장을 혼란에 빠뜨렸다. 소버린자산운용과 유사한 경영간섭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KT&G 지분 4%를 확보한 영국계 TCI펀드는 최근 "자사주를 전량소각하지 않으면 경영진교체를 추진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또 론스타는 동아건설의 매각주간사를 맡은 상황에서 채권입찰에도 동시에 참여해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이 같은' 기현상을 연출했다. ◆기업활동 위축 외국자본들의 투기적 행태는 기업경영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 지불한 돈이 작년 순이익(5조9천억원)에 맞먹는 5조6천억원에 달하고 있다. 지난해 연구개발 투자비(3조5천억원)보다 2조원이 많은 수치다. 현대자동차도 2천1백24억원을 투입,지분 1.94%를 매입했고,삼성물산(1천8백93억원) 아남반도체(1천1백54억원) 코리안리(1천25억원) 등도 1천억원 이상을 지분 매입에 사용했다. 금융계열사의 의결권 제한 축소 등을 핵심으로 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경영권 방어비용은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조사대상 어디냐 금융감독 당국은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금융감독원은 헤르메스를 직접 불러 조사하는 것도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증권거래소도 헤르메스 외에 1∼2곳을 더 조사 중이다. 증권가에서는 KT&G의 경영권 위협의혹을 받고 있는 TCI펀드가 1순위로 거론되고 있다. TCI펀드는 지난 4월에도 한신공영을 매수한 뒤,주가가 1주일 새 20% 가량 급등하자 보유물량을 골드만삭스에 되판 적도 있다. 또 SK㈜에 관련된 소버린자산운용 등 외국계 펀드와 한솔CSN주식을 단타매매한 익명의 외국계 펀드 등도 유력한 조사대상으로 관측된다. 증권거래소는 내부 감시시스템을 통해 이상매매 징후를 포착하고,불공정거래 혐의가 발견되면 금감원에 통보,정식 조사를 의뢰하게 된다. 금감원에서 사실이 확인되면 최고 무기징역에 부당이득의 3배까지 벌금이 부과된다. 백광엽·주용석 기자 kecor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