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남 TV사업 철수] 옛 아남그룹 국내사업 사실상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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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3년 국내 최초로 컬러TV를 생산하는 등 TV업계에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해오던 아남전자가 TV사업을 포기한 것은 삼성전자 LG전자 등 선두권 업체와 이레전자 디보스 등 후발업체 틈새에서 제 입지를 구축하지 못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PDP TV 및 LCD TV 생산시설을 갖추는 데 들어가야 할 막대한 투자비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결국 '확실치 않은 TV사업에 목돈을 쏟아붓느니 오디오 사업에 매진해 수익성을 개선해보자'는 게 아남전자가 내린 결론인 셈이다.
아남전자의 고민은 대부분 중소 TV 생산업체와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가전메이커에도 마찬가지여서 국내 TV업계 구조조정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업계 구조조정으로 번지나
아남전자가 본격적으로 TV사업부 매각에 나선 것은 판매량과 수익성이 대폭 악화된 지난 8월부터.아남은 올 초 '제2창업'을 선언하며 "매출 2천3백50억원과 영업이익 66억원을 달성하겠다"는 비전을 내세웠지만 올들어 9월까지 실적은 매출 1천1백91억원에 영업이익은커녕 61억원 적자를 봤다.
물론 이런 현상은 아남전자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대부분 중소 TV업체와 해외업체 역시 비슷한 어려움을 안고 있다.
네덜란드 필립스의 한국법인인 필립스전자가 최근 TV 모니터 등 AV가전 사업에서 손을 떼고 조명 의료장비 등에 역량을 집중키로 결정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도시바코리아도 지난 6월 AV제품 국내 판매를 중단했고 두산상사 역시 일본 소니의 TV 등을 판매하던 딜러 사업을 포기했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TV시장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삼성과 LG의 틈바구니 속에서 중소업체와 해외업체가 살아남기는 결코 쉽지 않다"며 "특히 삼성과 LG는 PDP 및 LCD 패널에서부터 완제품까지 일관생산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만큼 갈수록 격차가 벌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디오 전문업체로 새 출발
아남전자는 TV사업을 포기하는 대신 오디오에 집중키로 했다.
'AV 스페셜리스트'였던 회사의 비전도 '세계 최고 기술을 갖춘 오디오 전문업체'로 바꿀 계획이다.
아남전자가 오디오를 택한 이유는 TV부문에 비해 수익성이 훨씬 좋기 때문.실제 마란츠 데논 하만카든 등 세계적인 오디오업체에 납품하는 아남전자의 OEM 물량은 해마다 늘고 있으며,적절한 수익성도 보장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남전자는 이에 따라 올들어 오디오를 생산하는 중국 둥관공장 라인 증설작업에 나서 연산 2백40만대 규모로 확충했다.
아남전자 관계자는 "TV사업부 매각대금도 대부분 오디오 부문을 강화하는 데 쓰일 것"이라며 "적자 사업부를 털어내는 만큼 회사의 수익성도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남그룹 국내 사업 손떼나
아남전자의 TV사업 포기로 외환위기 전 21개의 계열사를 거느리던 중견 그룹인 아남의 국내 사업은 사실상 유명무실하게 됐다.
현재 △아남인스트루먼트 △아남정보기술 △아남옵틱스 등이 있지만 대부분 자기 브랜드를 걸고 국내 사업을 벌이지 않기 때문이다.
아남전자 창업주인 고 김향수 회장의 차남인 김주채씨가 대주주인 아남인스트루먼트는 최근 들어 시계 관련 사업을 접고,일부 전자부품 사업에만 전념하고 있는 상태다.
아남인스트루먼트는 아남전자 지분 19.97%를 보유한 최대주주이기도 하다.
아남은 한때 일본 니콘 카메라를 국내에서 제작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아남옵틱스를 통해 단순 수입 판매만 하고 있다.
외환위기 전 그룹 매출의 70%를 차지했던 아남반도체의 경우 동부그룹에 넘어간 상태다.
아남반도체의 반도체 패키징 사업부는 99년 김주진씨(창업주의 장남)가 대주주인 미국 앰코테크놀로지에 넘어갔고,산전 사업부는 프랑스 '르 그랑'에 인수됐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