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회장의 특별한 X-MAS] "원구야 한민아, 마술보러 가자"

"원구,한민이 어디있니."


크리스마스인 지난 25일 서울 후암동의 중증장애아 보육시설인 "가브리엘의 집".
아침부터 한 바탕 소란이 벌어졌다.


최태원 SK 회장이 가족들과 이방 저방을 드나들며 낯익은 듯 장애우들의 이름을 불러대기 시작했다.


"어이구,여기 있구나. 자 차를 타러 가자."
최 회장이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원구를 찾아내 반갑게 끌어안았다.


최 회장이 원구를 안아 차로 옮기는 사이 부인인 노소영씨와 윤정(여.15) 민정(여.13) 인근(9) 등 세 자녀도 오랜만에 다시 만난 장애우들과 인사를 하느라 분주하다.


최 회장 가족이 이 곳을 찾은 것은 지난 해 연말에 이어 두 번째.
크리스마스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장애우들과 온종일 보내보자고 가족들이 손가락을 걸어 약속한 터다.


"장애우들이 밖에 나가면 얼마나 좋아하는 데요. 저도 세남매를 키우지만 이 곳 아이들만 보면 그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울 수가 없어요."


'순수한 가족행사'라며 취재를 사양하던 부인 노소영씨는 장애우들을 찾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맏딸 윤정이도 "오늘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며 "아이들이 예뻐서 자꾸 오고 싶다"고 즐거워했다.


최 회장 가족들은 네명의 장애우를 3대의 차량에 나눠 태우고 광장동 워커힐호텔로 나섰다.


준환이만 빼고는 성준 원구 한민 등 세명이 몸을 전혀 가누지 못하는 중증 장애우다.


최 회장이 이날 세명만 시간을 같이 하기로 한 것은 그 이상이면 다섯명의 가족이 돌보기에 벅차기 때문이다.


네명도 벅차서 윤송이 SK텔레콤 상무가 동생인 하얀씨와 함께 최 회장 가족을 따라나섰다.


"윤 상무가 크리스마스인 데도 특별히 할 일이 없다고 해서 같이 오자고 했어요."


미혼인 윤 상무를 놀리느라 최 회장이 한마디하자 윤 상무의 얼굴이 금세 빨갛게 물들었다.


"기저귀는 언제 갈아줘야 되는 거예요?"


윤 상무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이것저것 꼼꼼히 챙겼다.


낮 12시께 워커힐호텔에 도착한 이들은 '크리스마스 매직 콘서트'가 열리는 가야금홀에서 일반인들 틈에 끼어 점심식사를 했다.


최 회장 가족과 윤 상무 모두 장애우들의 식사를 돕느라 땀으로 범벅이 됐다.


이내 마술쇼가 시작되자 아이들의 입에선 '와∼'하는 탄성이 터져나왔다.


"준환이는 정신집중이 어려운지 마술쇼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지만 음식은 하나도 남기지 않았어요." 노소영씨가 대견스러운지 흐뭇해 했다.


최 회장 가족들은 이날 오후 5시까지 서울시내 이곳 저곳을 다니며 장애우들의 허전한 마음을 채워주느라 바쁜 하루를 보냈다.


장애우들은 오랜만의 나들이에 어쩔 줄 모를 정도로 즐거워했다.


"크리스마스 때만 찾아오니까 장애우들에게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찾아와야 하는데…."


오후 5시.'가브리엘의 집'으로 다시 돌아온 최 회장은 장애우들을 내려주면서 못내 아쉬운 표정이었다.
윤정 민정 인근 등 세 자녀는 내년에도 다시 오자며 아빠 엄마의 손을 꼭 잡았다.


글·사진=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