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벤처도 관치하나

"임기자님,아까 말씀드린 거 익명으로 해주십시오.부탁입니다." 지난 24일 오전.불과 5분 전 기자에게 정부 비판을 늘어 놓았던 한 벤처캐피털 임원이 다시 급히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이처럼 당부했다. 그 관계자는 '제2의 벤처붐'을 조성하기 위해 이날 정부가 발표한 '벤처기업 활성화 대책'에 대해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지난 99년과 2000년 정부의 무차별 지원을 받고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함량 미달의 벤처캐피털들이 이제 간신히 정리되고 있는데 지금 정부가 나서서 또 기름을 부으면 어떻게 되겠느냐"며 정책의 부작용을 경고했다. 답변을 요구받은 다른 벤처캐피털 관계자들도 사정은 비슷했다. 또 다른 벤처캐피털 K사의 경우 나름대로 객관적 평가를 담은 보도 자료를 냈지만 회사 이름 대신 '벤처캐피털 업계'로 명명해 달라는 내용을 첨부했다. 실명을 허용한 대부분은 정부 대책에 찬양 일색이었다. 사실 올해 정부는 벤처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 많은 일을 했다. 하반기부터 투자 실적과 재무 상태 등을 기준으로 벤처캐피털에 대한 평가를 시범적으로 실시했으며 내년에는 의무화할 방침이다. 올 한해 벤처캐피털의 투자 규모는 12월치를 제외하고 4천9백78억원으로,외환 위기가 닥친 98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할 전망이지만 정부의 지원 비중은 사상 최고로 높아만 가고 있다. 논리도 명료하다. 경기 부양을 위해선 외부 효과가 큰 벤처산업을 되살려야 하는데,이를 위해선 자금줄인 벤처캐피털을 지원해야 한다. 투명성 논란이 많았던 벤처캐피털에 대해 직접 메스를 댄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이번 대책을 포함,벤처를 향한 일련의 정부 정책이 자생적으로 살길을 모색 중인 국내 벤처 생태계를 다시 한번 정부에 의존하도록 만드는 딜레마를 낳지는 않았나 우려된다. "잘될 것"이라고 정부 정책을 일방적으로 홍보하는 공기업 담당자의 답변과 벤처캐피털 업계의 반응이 별반 다르지 않다고 느낀 것은 단지 기자만의 생각이었을까. 임상택 벤처중기부 기자 lim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