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禪院산책] (19) 해인사 해인총림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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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채는 정면 13칸,측면 2칸이고,그 위쪽에 새로 지은 건물은 정면 7칸, 측면 3칸으로 둘 다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경남 합천 해인사의 해인총림선원이다.
선원은 고요하다.
마침 음력으로 11월 열나흘 삭발.목욕하는 날이라 선방이 텅 비었다.
납자들은 아침 공양(식사) 직후에 일찌감치 삭발을 한 뒤 단체로 목욕을 하러 가고 없다.
평소 외부인의 출입을 철저히 통제해온 선원에 그나마 발을 들여놓게 된 것도 선객들이 자리를 비웠기 때문이다.
가까이에서 보니 건물이 참으로 웅장하다.
지난 2003년 11월에 낙성한 상(上)선원은 아직 나무가 덜 말라서 단청도 하지 않았고 편액도 없다.
'少林院(소림원)'이라는 편액을 단 하(下)선원은 옛 극락전 터에 세운 건물.원래 대장경 판전으로 쓰려고 했으나 해인사의 중심인 판전을 주변으로 옮기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해서 지난 83년 동안거부터 선원의 중심 공간으로 쓰였다.
지금은 정해진 시간에는 상선원에서 정진하고 하선원은 개인 정진실로 사용되고 있다.
하선원 계단 아래에는 마당 대신 족구장이 2면이나 있어 이채롭다.
원래 해인사는 스님들의 기운이 드세기로 유명하다.
가야산의 산세가 험하고 화기가 펄펄 끓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불기운 탓에 해인사와 가야산은 숱한 화마(火魔)에 시달려왔고 불을 끄려면 체력이 필요해 해인사 스님들은 평소 축구를 즐긴다.
선원 마당에 족구장을 갖춘 것도 이런 까닭이다.
선원을 한바퀴 둘러본 뒤 선방 내부를 좀 보여달라고 하자 안내를 맡은 소임자가 "절대 안된다"고 단언한다.
선원 마당까지 들어온 것도 이례적인 일인데 방안까지 보려는 것은 과욕이라고 했다.
그래도 그냥 물러나기는 아쉬워 다시 간청해 보지만 돌아오는 답은 똑같다.
과연 해인사 선원이다.
해인사에 선원이 생긴 것은 1899년 봄 경허 스님이 조실로 추대되면서다.
왕명으로 해인사의 불경을 찍는 인경(印經) 불사의 책임자로 해인사에 온 경허 스님은 퇴설당에 '퇴설(堆雪)선원'을 열어 대중들과 함께 수행하며 공부를 점검했던 것.이후 용성·경봉·동산·효봉·고암·구산·청담·성철·자운·혜암·일타 등 수많은 선지식들이 해인사 선방에서 공부했다.
선지식의 산실이라 할 만하다.
무엇이 이를 가능하게 했을까.
바로 엄격한 수행 풍토이다.
안거 때에는 납자들의 등짝이며 어깨를 후려치는 장군 죽비가 숱하게 부러져 나갈 만큼 공부에 관한 한 경책은 인정사정 없다고 한다.
'가야산 호랑이'로 유명했던 성철 스님은 수행자들이 조금이라도 한눈을 팔면 "이 도둑놈아,밥값 내놔라"라고 호통을 쳤다.
'잠을 적게 잔다,간식을 탐하지 않는다,경전을 보지 않는다,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자리를 이탈하지 않는다'는 성철 스님의 '수좌 5계'는 지금도 해인사 선방의 큰 지침이다.
"음력 12월1일부터 8일까지는 잠을 자지 않고 용맹정진을 합니다.
이때에는 선방 납자들뿐만 아니라 강원,율원,산내 암자의 대중들까지 모두 참여하지요.
시간마다 50분 정진을 한 뒤 10분씩 포행(산책)을 하는데,포행 후 입선(入禪) 시간에 5분 이상 늦으면 나머지 시간은 일어선 채로 정진해야 합니다.
또 30분 이상 지각하면 좌복(방석)을 치우고 즉시 퇴방시킵니다."
성철 스님의 상좌로 해인총림선원을 지키고 있는 수좌 원융(圓融·67) 스님의 설명이다.
원융 스님은 용맹정진을 하는 이유에 대해 "한철에 쌓은 공력을 한번에 밀어붙여 본분 도리를 깨우치는 공부를 마치고자 하는 원력 때문"이라고 한다.
설령 깨치지는 못하더라도 용맹정진을 하고 나면 적잖은 보람이 있어서 더 하자고 조르는 수좌들도 많다고 스님은 덧붙인다.
해인총림선원의 또 다른 특징은 새벽 참선을 끝내고 매일 1백8배를 하며 참회한다는 것.심산유곡에서 도를 닦는 스님들에게 참회할 게 뭐 그리 많겠느냐고 물었더니 스님은 이렇게 대답한다.
"참회란 무량겁까지 계속하는 것입니다.
나뿐만 아니라 일체 중생이 모두 불법을 깨달아 참된 삶을 살도록 참회하고 기원하는 것이지요.
참회와 기원은 나를 위한 것보다 남을 위해 하는 것이 중요해요.
그래서 나와 남이 함께 이롭도록 일체 중생의 행복과 성불을 발원하지요."
총림 대중 전체가 보름마다 포살법회를 열어 각자의 잘못을 되짚고 참회하는 것도 해인총림의 오랜 가풍이다.
특히 그믐날의 포살법회 때에는 한 시간에 걸쳐 '범망경'을 들으며 마음으로부터 자비심을 일으키고 죄의 씨앗을 버려 수행에 매진할 것을 다짐한다.
이번 동안거에 방부(입방원서)를 들인 스님은 40명.실면적만 70평을 넘는 국내 최대의 선방 치고는 적은 인원이다.
그러나 원융 스님은 "안거 때마다 방부가 넘쳐나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한 방에 있으면 공부 분위기가 깨진다"며 "20년 이상의 체험에 의해 정해진 적정 숫자"라고 설명했다.
오후 5시,저녁 공양시간이 되자 목욕을 갔던 스님들이 하나둘 선방으로 모여든다.
새벽 2시부터 밤 10시까지 오로지 본분 도리를 묵연히 참구(參究)하는 선객들.잡철을 털어내고 본래 '순금'인 자기를 찾아나선 이들에게 '산은 산,물은 물'이다.
합천=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