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붙는 세계 자원전쟁] <4> 정보와 逆정보…스파이전

현대의 자원확보 경쟁은 과거 국가간 자원전쟁과는 확연히 다른 양상을 벌어지고 있다.


정치인이나 외교관 대신 기업가들이 나서고 교섭의 무대도 국제 특급호텔로 바뀌었다.
하지만 그 경쟁의 치열함이 덜해진 것은 아니다.


총과 대포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상대를 궁핍과 곤경에 몰아넣을 수 있는 경제전쟁의 시대가 아닌가.


허를 찌르는 기습과 음모,정보와 역정보,내밀한 뒷거래와 흥정은 자원 비즈니스를 구성하는 필수 요소다.




'CNPC TO BID FOR BMC-30 & BMC-32.'
지난해 7월 미국 정유회사 데본(Devon)의 휴스턴 본사로 긴급 전문이 날아들었다.


8월로 예정된 브라질의 'BMC-30'과 'BMC-32'광구 입찰에 난데 없이 중국 국영 석유회사인 CNPC가 참여할 것이라는 첩보였다.


발신인은 브라질 지사장인 무릴로 마로큄.브라질 석유청(ANP) 출신이다.
데본의 리드 테일러 남미담당 매니저는 컨소시엄을 구성한 미국 커맥기,캐나다 엔카나,한국 SK㈜ 등과 즉각 '컨퍼런스 콜(다자간 전화회의)'을 가졌다.


유력한 입찰 경쟁자인 브라질의 국영 석유업체 페트로브라스와 미국 정유회사 셸 등을 제치기도 힘겨운 판에 막강한 자금력을 앞세운 중국 회사까지 가세한다는 사실은 입찰 전략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커맥기의 로이드 워너 매니저가 먼저 입을 열었다.


"두 광구의 경제성은 우리 4개사 합동 조사로 입증된 만큼 무조건 가장 높은 가격을 써내 광구권을 따내야 한다"는 것.SK㈜의 최동수 탐사팀장 역시 "일전에 베트남 광구에서 CNPC와 한 번 붙어봤는데 상상하기 어려운 조건으로 입찰을 따내더라"며 거들었다.


엔카나의 쉐인 올리어리 부사장은 "중국 업체를 능가하는 조건을 달아야 한다면 BMC-32광구는 포기하겠다"며 한 곳의 입찰에만 참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결국 BMC-30은 4개사,BMC-32는 3개사가 컨소시엄으로 입찰에 참여했다.


4개사는 몇 차례에 걸친 긴밀한 협의를 통해 ①보너스(정부에 내는 구매비용) ②개발계획 ③시추 전 현지구매 비율 ④시추 후 현지구매 비율 ⑤개발·생산 전 현지구매 비율 ⑥개발·생산 후 현지구매 비율 등 6개항에 달하는 입찰조건에 합의했다.


①과 ②는 차이가 없다고 보고 ③과 ④를 50%보다 1%포인트 많은 51%,⑤와 ⑥은 80%보다 1%포인트 많은 81%를 제시키로 의견을 모았다.


협상이 이뤄지는 동안 CNPC는 브라질 ANP와 입찰 참가 의향서(MOU)를 교환했다.


마로큄 지사장의 첩보가 1백% 맞아떨어진 셈이다.


4사는 이 정도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CNPC의 참여가 가시화하자 꺼림칙한 기분은 지워지지 않았다.


요로를 통해 CNPC측의 동향 정보를 구해봤지만 도움이 될 만한 것은 없었다.


마침내 입찰일인 8월17일.그러나 입찰장인 리우데자네이루 셰라톤호텔에는 CNPC와 셸이 나타나지 않았다.


SK 컨소시엄과 페트로브라스 컨소시엄(페트로브라스와 스페인 렙솔) 등 2개 컨소시엄만 참가한 것.결국 SK 컨소시엄이 총점 82.8027점을 얻어 페트로브라스 컨소시엄을 누르고 광구권을 따냈다.


그러면 SK 컨소시엄이 CNPC가 참가한다는 역정보에 속아 지나치게 많은 금액을 써내 승리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페트로브라스 컨소시엄이 얻은 점수는 82.0771점.불과 0.71점 차의 미세한 승리였다.


"CNPC에 대한 첩보가 진실이었는지,아니면 고도의 역정보였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첩보가 아니었다면 SK 컨소시엄은 광구권을 페트로브라스 컨소시엄에 빼앗겼을 것입니다."(마로큄 지사장)


최동수 SK㈜ 팀장은 "광구를 놓고 벌이는 입찰전은 뚜껑을 열어보기 전에는 아무도 예단할 수 없는 것이 특징"이라며 "전혀 예기치 못한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누가 어떤 광구에 참여하느냐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정보지만 이것을 제대로 맞히기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분위기다.


ANP의 루이스 페르난도 만소 공보팀장은 "여러 광구를 동시에 입찰에 부치더라도 입찰서류를 받아보면 한 광구의 경쟁업체가 다른 광구에서는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경우도 매우 흔한 일"이라며 "누가 적이고 아군인지 식별조차 어렵다"고 말했다.


정확한 정보를 알기 어려울수록 정보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는 법이다.


호주에 진출한 한국과 일본 철강회사들은 대부분 사설 정보원을 고용하고 있다.


연간 5천달러 정도를 받는 이 정보원들은 상호 경쟁관계에 있는 업체들에 주간~월간 단위로 동향 정보를 제공하고 특정 건에 대해서는 별도의 커미션을 요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지난해 말 호주에선 이런 프로 정보원들도 놓친 놀라운 뉴스가 있었다.


중국 석탄회사인 옌저우가 '사우스랜드'라는 이름의 광산을 전격 인수한 것.사우스랜드는 안전사고 등으로 한때 조업을 중단하면서 경제성이 떨어져 어떤 업체도 쳐다보지 않던 광산이었다.


하지만 옌저우는 거금을 들여 이 광산을 낚았고 당초 헐값 인수를 노리던 호주와 일본 업체들은 중국의 과감한 베팅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포스코 호주법인의 신수철 차장은 "중국 업체들에 대한 정보 수집이나 동향 파악이 가장 어렵다"며 "특히 예상 밖으로 허를 찌르는 경우가 많아 정보력에서는 세계 최고라는 일본 종합상사들조차 애를 먹기 일쑤"라고 전했다.


시드니(호주)=조일훈 기자·리우데자네이루(브라질)=정태웅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