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원장 릴레이 기고-2005년의 과제] 농업, FTA 걸림돌 아니다

이정환 자유무역협정(FTA)이 중요한 국가 발전전략이 되고 있다. 그러나 한·칠레 FTA에서 보았듯이 농업문제 때문에 FTA를 추진하는 것이 용이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전혀 상반된 견해가 있다. 먼저 농산물은 관세가 높아 파급영향이 너무 크므로 FTA를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상황을 좀 더 냉철히 볼 필요가 있다. 관세가 1백%를 넘는 품목이 25여개이나 그 중 고추 마늘 양파 등 부가가치액이 큰 몇 개 품목과 관세화가 안된 쌀을 제외하면 나머지 고율 관세품목의 부가가치 규모는 1조원 정도로 농업 총부가가치의 5% 내외에 지나지 않는다. 대부분의 채소,과일,축산물의 관세는 20∼40% 수준이므로 관세철폐에 의한 수입가격 하락률은 15∼30% 정도에 머무를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이들 농산물은 같은 국내산도 산지나 품질에 따라 도매가격이 몇 배나 차이가 날 만큼 소비자가 품질에 민감하므로 소비자의 신뢰도를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관건이고 관세는 생각만큼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또한 현재 주요 과일과 축산물은 관세보다 검역 문제로 수입이 규제되고 있으므로 FTA와 관계없이 검역협상에 따라 수입이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그 뿐만 아니라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 결과에 따라 대부분 농산물의 관세는 큰 폭으로 감축되고 저율관세수입량(TRQ)도 늘어날 전망이다. 따라서 FTA만의 파급영향은 생각하는 것보다 적을 수도 있다. 이상의 사실을 고려하면 쌀과 관세가 높으면서 부가가치 규모가 큰 일부 농산물에 대해 특별취급 조치를 확보하고 직접지불제 등을 통해 소득안정 대책을 수립하면 농업문제는 생각하는 것보다 크지 않을 수도 있다. 이에 대해 FTA를 적극 추진하고 농업문제는 구조개선 정책으로 풀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노동시장의 경직성으로 농업 구조조정은 어느 나라에서나 시간이 매우 오래 걸린다는 사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현재 우리나라 농업취업자는 50%가 60세를 넘었고 90%가 40세를 넘어 전직 능력을 상실한 데다 대부분이 농업수입으로 생활비를 조달하고 있다. 따라서 농업 여건이 악화돼 소득이 감소하더라도 이에 저항하며 계속 농업에 종사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즉 짧은 기간에 획기적인 구조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농업 구조조정이 시장의 힘에 의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10년 전에는 3ha 이상의 대농이 전체 농지의 6%를 경작했으나 최근에는 20% 이상을 경작하는 반면 0.5ha 이하의 소농은 40%를 차지하지만 전체 경지의 13%만을 경작하는데 그칠 만큼 농업구조가 변화하고 있다. 문제는 대농도 급격한 규모 확대과정에서 농지,기계 및 설비확충에 투자를 많이 한 결과 부채가 늘어나 경영 여건이 악화될 경우 경영이 위태롭게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농산물 시장개방으로 경영 여건이 급격히 악화되지 않도록 하여 고령 농업취업자는 서서히 은퇴하고 대농은 안정적으로 규모를 확대해 연착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칠레 FTA는 피해 규모와 보상 방법,그리고 유예조치를 확보해야 할 것 등에 대한 검토가 부족한 가운데 추진하다 농가의 거센 반발에 부딪히자 "국가적 이익이 중요하다" "농업도 구조조정해야 한다"는 등의 논리로 압박,돌파하려 했다. 그 결과 '이해관계의 문제'가 '농업의 가치논쟁'으로 비화하고 나아가 '감정 문제'로 발전해 필요 이상의 갈등과 혼란을 초래하였다. 모두가 이상과 같은 사실에 대한 이해를 공유하여 농업인은 FTA에 대한 막연한 공포심을 극복하고,정부는 세밀한 협상안과 국내 대책을 준비하면 우리나라에서도 동시다발적 FTA 추진이 불가능할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