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자본 '2차 M&A공세'] 국내기업은 외국계 싹쓸이에 발동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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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 사모투자펀드 법령이 시행됨에 따라 출현할 것으로 예상됐던 대규모 토종 사모투자펀드(PEF)가 아직도 '무소식'이다.
미국계 대형 펀드인 론스타가 한국시장 등을 공략하기 위해 50억달러 규모의 사모펀드를 새로 결성키로 한 데 이어 각종 외국 사모펀드가 부동산을 팔고 기업을 사들이기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것과는 정반대 상황이다.
국내 사모투자펀드의 '대항마' 역할이 물건너 간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설립단계부터 까다로워
국내 사모투자펀드는 출자단계에서부터 규제를 받고 있다.
개인은 20억원 이상,법인은 50억원 이상 투자해야 한다.
외국에선 누가 얼마를 투자하든지 제한이 없다.
사모펀드는 불특정 다수로부터 자금을 모으는 공모펀드의 반대 개념으로,제약이 거의 없는 펀드를 지칭할 뿐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산업은행이나 기업은행이 설립목적에 부합하는 경우에 한해서만 출자할 수 있도록 했고,연·기금도 자체적으로 일정한 한도를 둘 움직임이다.
공정거래법상 출자총액제한에 걸리는 기업은 사모투자펀드 투자에 제약을 받는 것 역시 외국에선 찾아보기 힘든 규제다.
우여곡절 끝에 펀드가 만들어져도 주요주주 등에 대한 내역을 금융감독 당국에 신고해야 한다.
○자산 운용 규제는 더욱 엄격
사모투자펀드는 재산의 60% 이상을 1년 내 경영권 관련 투자로 운용해야 한다.
단순한 자본이득을 얻기 위한 포트폴리오 투자는 총재산의 5% 이내에서만 가능하다.
이 때문에 경영권에는 관심이 없으면서도 자유롭게 투자하고자 하는 투자자는 사모투자펀드에 출자하는 것이 오히려 불리하게 됐다.
사모투자펀드가 은행을 인수하고자 할 때 금융감독위원회 승인을 얻도록 한 조치도 사모펀드의 입지를 좁히고 있다.
증권가에선 현재의 사모투자펀드가 기존 'M&A 목적의 뮤추얼펀드'와 다를 바 없으며,정부가 연·기금을 동원해 우리금융 등을 인수하기 위한 것 외에는 실효성이 없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공정거래법도 국내 기업엔 족쇄
공정거래위원회는 현재 두산중공업의 대우종합기계 인수가 공정거래법을 위반했는지 여부를 따져보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엔 삼익악기의 영창악기 인수가 공정거래법의 독과점 규제에 따라 무산되면서 영창악기가 최종부도를 냈다.
동아건설의 파산채권을 인수하는 주체로 외국계인 월드스타가 낙찰된 것 역시 공정거래법 때문이라고 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동아건설 파산채권을 사들일 경우 대한통운을 인수할 가능성이 높아지지만,국내 업체에는 공정거래법 때문에 '그림의 떡'에 불과했을 것이란 얘기다.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지난 14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제일은행 매각과정에서 선진금융기법 전수 등의 기대효과는 하나도 얻지 못했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공정거래법의 족쇄에 묶여 국내 경쟁업체가 인수하지 못한다면 외국계 펀드가 이익만 챙겨가는 일이 계속 되풀이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