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시장 경쟁격화] "TV한대 팔아봐야 겨우 1000원 남아"

"차라리 배추장사를 하는 편이 낫겠어요." 베이징 시내 중심가에 자리잡은 가전유통업체 시바허점. 이곳에 점포를 두고 있는 국내 전자업체의 한 직원은 50만원짜리 TV 한 대 팔아봐야 1천원 밖에 남지 않는다고 푸념했다. 그러고 보니 한국 제품의 가격도 줄곧 인하돼 매장에 전시된 복합기능형 전자레인지 가격은 중국 제품 가격과 별반 차이가 없다. 지난해 말 처음으로 1만위안(1위안은 1백25원)선이 깨진 LCD TV 가격은 이제 9천위안대까지 낮아졌다. 중국 토종업체인 창웨이가 30인치 LCD TV를 1만5천위안대에 내놓아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지 불과 6개월만에 또다시 50%가 떨어진 것이다. DVD플레이어 메이커인 신커전자는 최근 다른 TV업체들에 비해 30% 싼 가격으로 TV시장에 진출하면서 DVD플레이어까지 끼워 팔고 있다. 21인치 브라운관 TV 가격은 불과 8백위안으로 96년 가격의 3분의 1수준에 머물고 있다. ◆가격전쟁,프리미엄시장으로 확산 중국 토종업체들의 거침없는 가격인하 공세에 그동안 안정적인 수익성을 유지해오던 다국적 기업들까지 피멍이 들고 있다. 지멘스 등 일부 업체를 제외하고는 현지에 진출한 대부분의 다국적 기업들이 적자를 낸 것으로 추정된다. 저가형 제품에 국한됐던 토종-다국적 기업간 가격전쟁의 전선은 프리미엄 제품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가전전문매장인 융러(永樂)에서는 창훙의 50인치와 도시바의 43인치 프로젝션TV가 각각 3천위안 이상 떨어진 8천위안대에 판매되고 있다. 벽걸이(PDP) TV 제조업체인 중국의 하이센스가 지난해 3월 42인치 제품의 가격을 3만9천8백위안에서 단숨에 1만위안이나 낮추며 고가TV 시장의 가격인하 경쟁에 불을 지핀 결과다. 중국 토종업체들의 프리미엄 시장 공략이 거세지면서 지난해 평면 TV시장에서 중국 브랜드가 차지한 비중도 40%에서 70%까지 확대됐다. 중국업체들의 중장기 전략도 고부가가치 제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창웨이는 오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까지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디지털 TV의 비중을 30%에서 70%선까지 끌어올리기로 했다. 창훙도 디지털 TV비중을 80% 이상으로 높인다는 계획이다. ◆생존경쟁 나선 다국적기업 중국 내 가격전쟁이 위험수위에 이르자 상당수 기업들은 가격인하 일변도의 출혈경쟁에 더 이상 가세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지멘스가 중국 내 냉장고 세탁기 가격을 올해부터 3∼5% 인상키로 발표한데 이어 일본 마쓰시타도 비슷한 방침을 내놓았다. 중국에서 '가격 도살자'로 불리는 세계 최대 전자레인지업체 거란쓰의 뤼야오창 부총재도 최근 "무의미한 가격전쟁에서 빠지겠다"고 밝혔다. 이는 프리미엄 시장에 가격인하 경쟁이 본격화되기 전에 제품과 브랜드 가격전략을 차별화해 수익성을 최대한 높여가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뤄칭치 풀릴컨설팅 가전컨설턴트는 "많은 업체들이 프리미엄 제품을 내세워 가격을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을 내놓고 있지만 시장점유율이 낮아진다면 전략 차질이 불가피할 것"이라며 "올해 중국 가전시장의 경쟁여건은 작년보다 훨씬 나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가전유통업체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제조업체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 것도 부담이다. 세계 가전시장 조사기관인 독일의 GFK에 따르면 중국 20개 도시에서 유통업체를 통한 PDP TV 판매비중은 2003년 37.0%에서 2004년 46.3%로,액정 TV는 41.3%에서 46.6%로 확대됐다. 이 와중에 궈메이 다중 쑤닝 등 유통업체들은 제조원가에 근접한 가격에 납품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어 제조업체와 적잖은 마찰을 빚고 있다. 하지만 출하물량의 절반 정도를 팔아주는 유통업체들을 제어할 수단이 마땅치 않아 가격인하 바람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베이징=오광진 특파원·조일훈 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