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스티지가 뜬다] 품격도 갖추고 실속도 차리고...


외국계 IT업체에 근무하는 박성희씨(38.가명)는 몇일 전 구입한 이태리산 청바지 '디젤'과 '바네사 브루노' 핸드백을 코디해 보고 입가에 미소를 머금는다.


두 브랜드 모두 매스티지(masstige.준 명품)로 구입가격에 비해 기대 이상으로 잘 어울렸기 때문.
"명품 핸드백 하나 살 돈으로 매스티지 2개 사기를 잘했네..."


디젤과 브루노를 걸친 박씨는 1달 전 구입한 혼다 어코드 승용차에 올라 시동을 건다.


'나도 외제차 몬다'는 야릇한 만족감 때문인지 길이 막혀도 별로 짜증스럽지 않다.
오랜 만에 친구와 만나는 점심장소는 여의도역 인근 샌드위치 전문점 '투 썸 플레이스(Two Some Place)'.


현대적이면서도 그렇게 비싸지 않아 박씨는 친구들과 약속을 주로 이곳에서 한다.

'대중 명품''준 명품'이라는 뜻의 매스티지가 뜨고 있다.


'명품족'은 아니지만 브랜드 가치를 중시하는 중산층 이상 소비자들이 박씨처럼 '매스티지족'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있다.


매스티지란 '대중(Mass)'과 '명품(Prestige product)'을 합친 신조어.
쉽게 말해 부유층만 구입할 수 있는 전통적 의미의 명품(Old Luxury Brand)과 달리 중산층 소비자들도 살 수 있는 준명품이다.


가격이 합리적이면서도 고품질과 고품격을 유지해 소비자들은 명품 못지 않게 감성적 만족을 얻는다.


명품 선호 추세에 불황으로 인한 '실속형' 소비가 가미된 트렌드라고 볼 수 있다.


국내에서 매스티지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2003년말.


당시 패션분야에서 빈폴 티셔츠,MCM이나 코치 가방,보디숍 화장품,루이까또즈 지갑 등이 매스티지 유행을 주도했다.


유행이 확산되자 기존의 명품 브랜드들도 너도나도 매스티지 브랜드를 개발했다.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아르마니 익스체인지'를,프라다는 '미우미우'를 선보였다.


미우미우는 프라다보다 가격이 30% 정도 저렴해 프라다 애호가들로부터 인기를 끌었다.


독일 자동차 BMW는 가격정책으로 비슷한 효과를 봤다.


최하위 모델 3시리즈를 4천만원대에 내놓아 호응을 얻은 것.


325세단의 경우 2002년 당시 판매액이 12% 상승하는 좋은 성적을 거뒀다.


수천만원대를 호가하는 명품 디지털 카메라회사가 1백만원대 보급형 디카를 만들어 폭발적 호응을 얻는 경우도 있다.


이제 매스티지는 패션에서 전자제품 외식 식품 뷰티용품 아파트 등 생활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하우젠 지펠 트롬 등 국내 가전 브랜드,쉐르빌 LG자이 등 프리미엄 아파트명도 '매스티지 트렌드'의 하나로 해석할 수 있다.


와인을 취급하는 외식업소가 늘고 있는 현상도 매스티지 유행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와인과 마늘요리를 전면에 내세운 레스토랑 '매드 포 갈릭' 등은 웰빙바람까지 겹쳐 톡톡히 재미를 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식품분야에서는 올리브유,냉장유통 주스,프리미엄 생수,발효유 등이 매스티지 바람의 한 예다.


올리브유는 일반 식용유에 비해 가격이 5배나 비싸지만 웰빙기름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판매량이 4년만에 8배(올해 8백억원대)나 커졌다.


공기청정기도 가습기능,산소발생기능,독감 바이러스 및 유해가스 제거기능,알레르기 원인물질과 곰팡이균을 없애주는 기능을 첨가한 프리미엄 제품이 속속 개발되고 있다.


비데도 음이온 발생,은나노 노즐,공기방울 세정 등의 기능을 채택한 '매스티지 모델'이 인기다.


불황이 깊지만 매스티지 족들은 오히려 자신의 색깔을 드러낸다.


평소 씀씀이를 줄이더라도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상품에는 아낌없이 지갑을 열고 있는 것이다.


명품이 지난해 불황속에서도 플러스 성장한 것처럼 매스티지제품도 브랜드별로 10∼50% 실적이 신장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대백화점의 경우,전체 명품 매출 가운데 매스티지 제품의 매출비중이 50%를 넘어서고 있다.


2000년 매스티지 현상을 처음으로 분석한 미국 경제잡지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따르면 미국에서 매스티지 상품은 전체 소비시장의 19%를 차지하고 있다.


또 연간 10∼15%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할인점 등에서 중가 제품을 주로 구입하던 미국 중산층 소비자들이 2000년대 들어 조금 좋은 품질에서 감성적인 만족을 얻기 위해 매스티지를 선호하는 추세라는 얘기다.


매스티지 제품은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며 자신를 표현하고 싶어하는 욕구를 자극한다.


소비자들에게 명품은 아니지만 매스티지족이라는 자긍심과 심리적 동질감을 주기도 한다.


물론 매스티지족은 과시적 소비만 일삼는 명품족과는 다르다.


합리적인 가격선에서 자신의 가치를 확인시켜 줄 수 있는 브랜드를 찾아 소비를 즐기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신지식인(new Intelligentia)' 또는 '코쿠너(cocooner:자기 울타리속에서 삶을 즐기는 사람들)'와 일맥상통한다.
2005년 한국 내수시장의 회생 가능성은 매스티지족을 얼마나 만들어 내고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규호 기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