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뜰 설 선물] 가격 저렴해도 정성을 채웠죠


서울 동작구 흑석동 한강현대아파트에 사는 결혼 5년차 주부 한명매씨(38)는 명절 때만 되면 고민이다.


남편의 얄팍한 명절 보너스를 쪼개 경남 산청에 계시는 시부모님과 서울에 계신 친정 부모님 선물을 장만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댁에 가는 날이면 신경 쓰이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일가 친척 동생들은 서울 대기업에 근무하는 남편에게 상당히 기대하는 눈치다.


그렇다고 빚을 내 선물을 마련할 수는 없는 노릇.
한씨는 일단 원칙을 정했다.


어차피 모두를 만족시키기는 힘든 일이니 저렴하더라도 정성껏 선물을 준비하자고 편하게 맘 먹었다.


선물 쇼핑에 나서기 전 일단 선물 리스트를 만들었다.
지출 가능한 예산 범위 내에서 써야 하기 때문이다.


한씨의 쇼핑 목록을 잠시 들여다 보자.맨 위에는 시부모님과 친정 부모님이 좋아할 만한 상품과 가격들이 올라 있다.


70대 중반인 시부모님은 건강에 좋다면 식품이든,생활용품이든 다 좋아하시는 편.수삼세트 안마기 한우건강세트 등등.수삼세트는 품질에 따라 1.2kg짜리가 10만∼20만원 정도이고 안마기 효도신발 옥베개 등은 10만원 이하로 구입할 수 있다.
끼니 때마다 끓여드릴 수 있는 한우건강세트(사골 3kg+꼬리 1.5kg)는 16만원 정도면 가능하다.


생선을 좋아하는 시아버님을 위해 태양초 고추장에 재운 고추장 영광굴비세트도 올라 있다.


서울에 계신 친정 부모님은 약주를 좋아하신다.


한씨는 같은 값이면 전통주를 준비할 생각이다.


상황버섯술,가시오가피주,복분자술 등 전통주는 한 세트에 2만∼3만원이면 살 수 있다.


전통주에는 한과가 그만이다.


안주로도 좋고 간식으로도 그만인 한과세트도 2만∼3만원이면 살 수 있다.


동서나 조카들에게도 조그만 선물이나마 준비하지 않을 수 없다.


비싼 선물은 부담이고 그렇다고 값 싼 선물은 주고 나서도 찜찜한 마음이 가시지 않을 것 같아 고민하다 실속이 제일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조카들에게는 양말이나 털장갑을,동서들에겐 커피세트를 사주기로 했다.


치약 비누 샴푸 등이 들어 있는 생활용품 세트도 후보로 적어 놓았다.


남편은 고향에 간 김에 중·고교 은사님을 찾아 뵙겠다며 은근히 선물을 준비해 달라고 눈치를 준다.


보너스는 쥐꼬리만큼 주면서 챙기는 것은 얼마나 많은지….전형적인 시골뜨기 타입이다.


그러나 어쩌랴,1년에 두 번 가는 고향인데 하고 싶은 대로 해줄 수밖에.매장을 둘러보니 오롯한 향을 내는 전통차가 가격이나 품격 면에서 적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급 녹차세트가 3만원 안팎,다기는 2만5천원 정도였다.


남편은 고등학교 다닐 때 가장 멋쟁이로 소문났던 영어 선생님에게는 유명 브랜드 넥타이를 선물하겠다며 돈 걱정은 말라고 했다.


아마도 숨겨둔 비상금이 있는 듯했다.


남편 홍종탁씨(40)도 대책없는 바보는 아니다.


어차피 설 쇠고 서울로 돌아오면 아내 바가지는 예정된 일.아내를 놀라게 할 선물을 미리 준비해 놓았다가 바가지 긁을 찰나에 들이밀기로 했다.


조금 비싸긴 하지만 기초 화장품세트 사는 데 7만∼8만원 정도 지출하기로 했다.
분당에 사는 동생은 엊그제 음악회 티켓을 싸게 구입해 '비밀병기'로 숨겨 놓았다며 은근히 자신의 치밀함을 자랑했다.


강창동 유통전문기자 cd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