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피와 뼈' 수컷본능에만 집착한 '핏빛 父性'


아버지(기타노 다케시)는 어머니를 강간해 아들을 낳고 그 아들은 장성해 아버지와 주먹다짐을 한다.


부자간의 격렬한 싸움 뒤에는 배다른 자식의 탄생 장면이 뒤따른다.
아버지가 삶에서 유일하게 기쁨을 표시하는 순간이지만 자식은 다시 폭압의 희생양이 된다.


재일동포 최양일 감독의 영화 '피와 뼈'는 영화 사상 가장 냉혹한 아버지상을 그려낸다.


자식에 대해 강한 집착을 보이지만 사랑을 전혀 주지않는 이율배반적인 아버지상이다.
일제시대 일본으로 떠난 제주도출신의 재일교포 김준평씨의 실화를 토대로 만든 이 작품은 생식본능에만 집착했던 한 인간의 삶을 밀도있게 표현했다.


이 영화에서 폭력은 주인공의 생존 방식이다.


폭력은 아내로부터 시작돼 아들과 딸,사위,자기 회사의 재일동포 직원 등으로 전염된다.
그것은 시대를 거스른 퇴행적인 삶의 결과물이다.


그는 동물 집단의 우두머리나 원시 씨족사회의 족장처럼 묘사된다.


늙고 병든 그가 가족들로부터 추방당하는 모습은 야생 동물들의 말로와 다름없다.
재일동포 사회의 고립성을 강조하기 위해 일본인들의 조선인 차별 장면들은 의도적으로 배제돼 있다.


어묵 생산사업과 사채놀이,북한행으로 이어지는 주인공의 행보에도 고립성을 부각시키려는 연출 의도가 엿보인다.


사람들은 하나 둘씩 그의 곁을 떠나고 죽는 순간에는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아들이 곁에서 국수를 먹고 있다.


아들의 내레이션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에는 폭력의 '질긴' 업보가 새겨져 있다.


아버지를 그토록 증오했던 아들은 어느새 아버지와 닮아 버렸고 딸은 다른 형태의 폭력에 방치되고 만다.


주인공 준평이 모진 인간으로 바뀐 이유는 간접적인 방식으로 관객의 상상에 맡겨져 있다.


도입부와 종반부에는 해맑은 미소의 청년 준평이 꿈을 안고 일본에 도착하는 모습이 나온다.


그러나 발단 부분에서 태평양전쟁 강제 징집과 이로 인한 동포사회의 분열,조선인과 일본인간 대립 등이 짧게 묘사됨으로써 그의 영혼이 시대의 격랑에 휩쓸려 버렸음을 보여준다.
25일 개봉,18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