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禪院산책] (25ㆍ끝) 쌍계사 금당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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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망을 진 스님들이 금당(金堂) 앞 계단을 내려선다.
까칠한 얼굴에 투명한 눈빛,미련도 잡념도 털어낸 듯 맑은 표정.음력 10월 보름부터 석달간 산문(山門)안에 몸을 가두고 화두와 씨름해온 이들이다.
석달 전에 올라왔던 계단을 내려서 또다시 길을 나서는 이들은 그동안 무엇을 얻었을까.
"공부가 잘 됐으면 이렇게 철마다 왔다갔다 하겠습니까."
조심스레 지난 한 철 공부가 어떠했느냐고 말을 건네자 수좌는 이렇게 답한다.
올해로 선방을 다닌지 만 10년.길다면 긴 세월이지만 스님에게 초조한 기색은 없다.
조급한 마음을 가지는 것 자체가 마음공부에는 방해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경남 하동군 화개면의 쌍계사 금당선원(金堂禪院).신라 성덕왕 21년(722년) 김대비(金大悲)와 삼법(三法)이라는 두 스님이 중국으로 유학갔다가 육조 혜능선사의 머리를 모셔와 절을 세운 자리에 들어선 선원이다.
구법의 일념이 얼마나 간절했길래 육조의 머리를 모셔왔을까.
대웅전 앞마당 끝에서 오른편으로 난 길을 따라 옥천교(玉泉橋)를 건너 가파른 계단 위에 올라서면 금당선원 구역이다.
'頓悟門(돈오문)'이라는 편액과 함께 일반인의 출입을 제한하는 안내판이 선원 구역임을 말해준다.
청학루를 돌아 팔상전 왼편의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금당이 한눈에 들어온다.
금당에는 '金堂'이라는 편액을 중심으로 '世界一花(세계일화) 祖宗六葉(조종육엽)''六祖頂相塔(육조정상탑)'이라는 추사 김정희의 글씨가 좌우에 걸려 있다.
추사가 당시 금당에 살던 만허 스님의 은덕에 보답하기 위해 써준 글씨로 '세계일화 조종육엽'은 부처님의 근본 진리가 보리 달마에서 육조 혜능까지 이어져온 것을 뜻한다고 스님들은 풀이한다.
금당 안에는 육조의 정상을 모신 탑이 봉안돼 있다.
법당에 탑을 모신 곳으로는 이곳이 유일하다.
금당 좌우편의 서방장(西方丈)과 동방장(東方丈)이 선방이다.
동·서방장은 각각 3칸짜리 건물로 많아야 10명가량 앉을 수 있는 13평 규모의 작은 선방이다.
하지만 수많은 고승들이 배출된 명당이다.
조선시대 벽송지엄-부용영관-서산-부휴선수-벽암각성-백암성총-응암낭윤-화악평삼-긍암계정 등으로 이어지는 문파가 쌍계사 일대에서 법을 전했다.
근대에 와서는 경허 스님이 탑전에 선원을 개설한 이래 용성,운봉,금오,동산,청담 스님 등이 이곳을 거쳐갔고 효봉 스님은 1956년 당시 사미였던 법정 스님을 데리고 쌍계사 탑전에서 정진했다고 한다.
"금당선원은 전국에서 손꼽히는 선실(禪室)입니다.
중국에서 차 종자를 처음 들여온 진감 국사와 대각 국사,보조 국사 등 여기를 거치지 않은 분이 없어요.
보조 국사는 육조정상을 참배한 후 불일암에서 정진했다고 하지요.
당시 보조 국사는 금당에 와서 주장자를 짚고 '주천하지제일(周天下之第一·두루 천하의 제일)'이라고 극찬했답니다."
지난 70년대 퇴락했던 쌍계사에 주지로 와서 현재의 대가람으로 중창한 조실 고산 스님(71)의 설명이다.
지난 99년 총무원장을 역임한 고산 스님은 13세에 동산 스님을 은사로 범어사로 출가해 선(禪)과 교(敎)를 겸수한 선지식.금당선원에서 정진하면 기운이 솟구쳐 한시간만 앉아 있어도 머리가 맑아지고 잡념이 사라진다고 노장은 전한다.
특히 서방장은 한철만 제대로 공부하면 견성오도(見性悟道)한다고 할 만큼 뛰어난 수행처라고 한다.
예컨대 서방장에서 졸거나 졸음에 겨워 눕거나 하면 육조정상을 호위하는 사천왕이 나타나 깨우기도 하고 발로 밟아 가위 눌리게도 해서 아무도 눕지 않는다는 것.고산 스님도 서방장에서 정진하다 깨침의 경계를 열고 '마음이 행하는 것은 한바탕 꿈이요(心行一場夢) 마음을 쉰 것이 곧 잠깬 것이로다(息心卽是覺) 꿈과 생시가 한결같은 가운데(夢覺一如中) 마음광명이 대천세계를 비추도다(心光照大千)'라는 오도송을 읊기도 했다.
이런 까닭에 동방장에선 하루 10시간의 표준적인 정진 시간만 지키지만 서방장은 24시간 정진하는 곳으로 사용한다.
이번 겨울 안거에선 동방장에 6명,서방장에 10명이 정진했다.
금당선원의 청규는 여느 선원과 다름없이 엄격하다.
산문 밖 출입금지,서적·신문 탐독 금지,묵언,정진시간 엄수,개인물품 반입금지 등 제한 요소가 많고 자유정진도 일절 없다.
선방이 작아 50분 참선 후 10분간 포행하는 것도 금한다.
죽비를 치는 대신 스스로 시간을 정해 포행한다.
고산 스님은 참선 공부에도 욕심은 금물이라고 경계한다.
욕심 보따리를 앞에 두면 참선은 더디기만 해요.
공은 칠수록 더 튀어오르듯이 망상은 버리려 할수록 더 달려들거든요.
그래서 참선할 때 '어서 성불해야겠다'는 탐심(貪心),'왜 이렇게 공부가 안될까' 하고 짜증내는 진심(嗔心),'이만하면 공부를 잘하는 것'이라고 스스로 자만하는 치심(癡心)을 버려야 합니다."
움직이거나 머무르거나,앉으나 서나 흔들림 없이 공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시종여일(始終如一)하게 꾸준히 공부하는 것이 견성오도의 첩경이라고 고산 스님은 강조한다.
"밥을 먹을 땐 밥 먹는 이 놈이 무엇인고,화두를 들 땐 화두 드는 이 놈이 무엇인고 하고 오롯이 참구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생활에서 참선 아닌 것이 없고 시절 인연이 대쪽 맞추듯이 맞아지면 견성하는 겁니다.
그러니 너무 급하지도 말고 앞서지도 말고 평상심으로 계속 정진하면 돼요."
동안거 해제 법회를 마친 납자들이 산문(山門)을 나선다.
선지식들이 늘 강조하듯이 이들에게 해제는 공부의 중단이 아니라 자리만 바꾼 것일 뿐이다.
해제는 견성오도해야 비로소 할 수 있는 것.어디에 있든 스스로 주인이 돼라(隨處作主)고 하지 않았던가.
하동=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