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금융불안 자초한 당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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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 국회 업무보고 자료로 인해 세계 외환시장이 요동친 23일.국내 채권시장에선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정부가 이날 오후 확정 발표키로 한 3월중 국고채 발행규모가 일부 언론매체를 타고 오전중 보도된 것이다.
재정경제부 고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3월 국고채 발행물량이 3조9천억원 수준'이라는 짤막한 뉴스가 뜬 것이다.
채권시장 참가자들은 이 보도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시장에선 3월 국고채 물량이 2월 3조3백억원보다 많은 4조원대에 이를 것이라는 추정이 우세해 금리가 상승중이었다.
보도 여파로 금리가 다시 하락세로 바뀌는 등 채권시장이 요동쳤다.
재경부는 부랴부랴 "국고채 물량을 확정하지 않았다"는 멘트를 내보내며 해프닝을 가라앉히려 했다.
이같은 법석은 정부의 공식 발표체계에 커다란 구멍이 나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채권시장은 하루에도 수십조원이 움직인다.
작은 정보 하나가 수십억∼수백억원의 이익이나 손실을 가져다 주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가 시장에 영향을 줄 만한 사안은 채권시장이 끝난 뒤 발표하는 것이다.
이날 정부에서 흘러나온 정보의 정확성은 둘째 문제다.
최종 결정되지 않은 사항이,사전에 무책임하게 흘러나갈 수 있도록 방치되고 있는 발표 시스템이 더욱 큰 문제다.
3월 국고채 물량이 새나간 것은 금융통화위원회가 매달 결정하는 콜금리의 수준이 미리 알려진 것이나 다름없는 사안이다.
정부가 혹시나 시장을 실험하기 위해 3조9천억원이라는 숫자를 내 보낸 것이라면 '장난질'이란 비난을 받아 마땅할 것이다.
앨런 그린스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신중하면서도 완곡한 표현으로 시장에 시그널을 주는 표현으로 유명하다.
우리 정부에 이 정도 수준을 기대하는 것은 힘들 것이다.
하지만 주요 의사결정이 최종 확정될 때까지 보안을 유지해 달라는 요청은 무리가 아닌 듯싶다.
박준동 경제부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