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어느 졸업식장의 풍경

장석주 각급 학교들의 졸업식이 한창이다. 나도 며칠 전 딸 아이의 대학교 졸업식에 다녀왔다. 교문으로 향하는 길에는 꽃 파는 노점들이 늘어서고,밀려드는 차량과 사람들이 뒤엉켜 교문 앞은 혼잡하기 짝이 없었다. 나는 아이와 아이의 단짝 친구에게 줄 꽃다발을 사고 본관 건물 앞에서 아이를 기다렸다. 때마침 함박눈이 쏟아져 잘 가꾼 나무들과 고풍스런 대학 건물이 어우러진 풍경은 마음마저 그윽하게 만들었다. 함박눈을 맞으며 교정을 걸어다니는 학사모를 쓴 아이들의 표정이 어쩌면 그렇게 한결같이 밝고 예뻐 보이는지! 한참 뒤에 학사모와 검은 가운을 입은 아이가 웃으며 나타났다. 아이에게 꽃다발을 건네주고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아이는 제 애비의 팔짱을 끼고 환한 표정을 지었다. 그 순간 잔정 없고 늘 일에 몰두하느라 무뚝뚝한 애비 밑에서 잘 자라주고 무사히 대학을 졸업하는 아이가 대견스럽고 한편으로 자랑스러웠다. 딸 아이가 매화처럼 예스럽고 대나무처럼 꼿꼿하게 자라길 바랐다. 돌이켜 보면 인생에서 아이를 잘 키우는 일만큼 힘든 일은 없었던 듯싶다. 사춘기를 지날 무렵 두 아들은 엇나가고 기대를 벗어난 행동으로 무던히도 내 속을 끓였다. 다행히 딸 아이는 불만을 혼자 속으로 눅이며 애비의 훈육을 내치지 않고 잘 따라주었다. 졸업식은 학교 강당에서 치러졌는데 소음은 그치지 않고,실내는 시장통처럼 북적거려 애초에 차분한 기분으로 행사를 지켜보기는 틀린 일이었다. 학사모와 가운을 걸친 많은 학생들이 갈 길 잃은 사람처럼 밖에서 우왕좌왕 하거나 제 친구나 하객과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나는 겉치레에 불과한 형식보다는 실질을 중히 여기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식장의 난잡스럽고 소란한 분위기와 이제 대학을 마치는 아이들의 제멋대로인 행동에 그만 씁쓸한 기분이 되고 말았다. 그것은 아이들의 발랄함과 생동함에 마땅히 깃들어야 할 의젓함과 기품이 빠져 있었던 탓이다. 나는 귀가 멍멍해지는 소음과 연신 몸을 부딪치고 나아가는 사람들 틈에 끼여 부대끼면서 생뚱맞게 박목월 시인의 '동정'이란 시를 떠올렸다. '한복을 입으면/고향에 돌아온 마음/절로 음성이 부드러워지고/눈빛이 순해진다. /앞섶을 여미면/갑자기 환해지는 동정/등줄기가 곧아지고/위엄이 서린다.' 사회적 규율과 통제에서 벗어나버린 발랄함에서 무질서와 방종을 보고,남에 대한 섬세한 배려와 사려깊음이 없는 행동에서 희망보다는 비관을 먼저 떠올린 것은 내가 고루한 어른인 탓만은 아닐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 전체는 돈과 권력과 지위에 대한 갈망은 키우고 부추기지만,하지 말아야 될 것과 해야 될 것을 분별하는 힘과 내면의 서늘한 기품과 위엄 따위는 숭상하지 않는다. 자신을 다스림은 마땅히 가을 기운을 띠어야 하고,처세는 의당 봄 기운을 띠어야 한다는 가르침은 아이들 자신이 아니라 누군가 인생을 더 산 이들에게서 전수받아야 할 지식이고 지혜다. 아이들에 대한 가르침은 사랑스럽고 귀할수록 때로는 엄해야 하는 까닭은 이 딸들이 결국은 아내가 되고 어머니가 되어 부모를 모시고 이웃을 사귀고 어린것들을 길러낼 것이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서 있었기에 피곤을 느끼면서도 내 상상은 이곳의 모든 아이들과 하객들이 단정하게 한복을 입고 차분하고 질서 있게 식장에 앉아 있는 것으로 건너뛴다. 의복이 본질을 만들지는 않더라도 사람의 감정과 의식을 규정하는 일면이 있다. 목월이 한복을 차려 입은 사람들의 모습에서 밝고도 엄한 아름다움과 차고도 밝은 겨레의 기품을 발견한 것은 그런 맥락에서 이해되는 것이다. 대학 문을 나선다고 아이들의 없던 덕성이 생겨나고 인격이 절로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아직 우리 어른들에겐 아들들을 관후하면서도 단정한 인품을 가진 아버지로,딸들을 알차고 정숙한 인격과 덕성을 가진 어머니로 키울 책임과 의무가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