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그 슬픈 상처위로 사랑이 피어날까..'여자, 정혜'


이윤기 감독의 데뷔작 '여자,정혜'는 일상에 파묻힌 평범한 여인의 상처를 발견하고,그 치유 가능성을 찾아가는 영화다.


우체국 직원 정혜(김지수)와 그곳에서 정기적으로 자신의 원고를 부치는 작가 지망생(황정민)과의 사랑이 중심 이야기다.
정혜의 사소한 일상을 장시간 포착하다가 아픈 기억을 조금씩 끄집어 내는 것을 통해 삶의 리얼리티를 포착하고 있다.


그러나 영화의 매력은 주제 자체 보다는 주제를 표현하는 방식에서 찾아진다.

카메라는 무의미한 소음에 포위돼 있는 정혜를 포착한다.


식탁 위의 젓가락질 소리와 자동차 경적,시계 알람과 수군거림이 에워싸는가 하면 진심이 깃들지 않은 말과 다양한 상술이 늘 그녀를 기웃거린다.


'내 것이 아닌' 환경에 대해 그녀가 맞서는 방식은 '무표정한 얼굴'이다.
그것은 타인과 소통하기 어려운 현대인의 고립을 대변한다.


무의미한 말과 소음들은 존재의 고독을 강화시키는 장치다.


그녀가 울음을 터뜨릴 때(소통의 첫걸음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화면에는 정적이 감돈다.
대부분의 샷은 정혜를 1m 안팎의 거리에서 촬영하고 있다.


남성 감독(카메라)의 시선으로 여주인공을 관찰하는 양식이다.


여자가 당황할 때 남자(카메라)도 움찔하면서 한 발 물러난다.


남자의 데이트 신청을 받은 정혜의 표정을 담은 종반부는 상징적이다.


오른쪽을 주시하고 있는 정혜의 얼굴이 화면 왼쪽에 배치되고 화면 오른쪽에 여백을 두는 게 일반적이지만 여기서는 정반대다.


균형감을 잃은 화면 구성은 희망 속에 깃든 불안과 혼돈의 그림자를 표현하고 있다.


삶의 다양한 의미가 다채로운 카메라 워크로 드러나는 것이다.


장편 영화이지만 '긴' 단편 영화 같은 분위기가 짙다.


그것은 주인공의 감정 곡선의 방향타가 되는 에피소드들이 너무 빈약하기 때문이다.
10일 개봉,15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