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업체는 내 친구] '글로벌 톱' 향해 함께 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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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相生)은 상극(相克)의 반대말이다.
공존하자는 의미의 이 단어에 대해 노자는 도덕경 제12장을 통해 '유무상생(有無相生)'이라는 표현을 썼다.
있고 없고는 서로 상대하기 때문에 생긴다는 의미로 서로 대립되는 사물의 공존적 관계를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고전적인 단어가 디지털 컨버전스(융ㆍ복합)시대의 경영화두로 등장한 것은 아이러니컬하다.
종전까지 대기업과 중소기업,원청업체와 하청업체의 관계를 묶는 말은 '협력'이었다.
몇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적지 않은 대기업들이 협력업체들을 '거느리고'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구매력이라는 강력한 영향력을 앞세워 납품단가와 규모 등을 일방적으로 조절하며 협력업체들을 쥐락펴락해 왔다.
하지만 이처럼 구태의연한 방식으로는 국가간 총력경주체제로 전개되고 있는 글로벌 경쟁의 파고를 이겨나갈 수 없는 현실이 찾아왔다.
사실 협력이나 상생은 그 의미에서 큰 차이가 없지만 재계가 굳이 상생을 들고 나온 것은 과거 협력업체와 인색하고 협소했던 관계의 지평을 발전적으로 확대해 나가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상생경영을 그룹의 4대 경영 방침 중 하나로 삼고 있는 이건희 삼성 회장은 "궁극적으로 중소기업이 대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떠받치지 않는다면 대기업의 화려한 실적은 한낱 종잇장에 불과할 뿐"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월드 퍼스트(세계 최초)' '월드 베스트(세계 최고)' 제품을 만들려면 제품 설계부터 출하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협력업체들과 긴밀하게 협력해야 한다"며 "지난해 사상 최고의 실적이 사상누각이 되지 않으려면 1만여개 협력업체들과 동반 성장하는 전략을 구체화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협력업체와의 상생경영은 삼성을 비롯한 대기업들이 최근 들어 수조원대의 수익을 거두면서 더욱 탄력을 받아가고 있다.
돈을 벌기 때문에 여유를 부리는 것이 아니다.
글로벌 톱 수준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선 협력업체의 수준 역시 비슷하게 올라가야 한다.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 회장은 오는 2008년까지로 예정돼 있는 '글로벌 톱5' 달성을 위해 올해부터 전 세계 시장을 대상으로 하는 품질경영시스템(GQMS)을 운용키로 했다.
이 시스템은 품질문제가 발생한 이후 관련 부서들이 신속하게 문제점을 점검한 뒤 협력사들도 품질 개선에 적극 동참토록 하는 것이다.
현대차는 또 협력업체와의 공정한 거래관계 유지를 위해 구매윤리 헌장을 제정했다.
협력업체와의 거래에 엄정한 공개입찰과 전자입찰제를 정착시켜 투명성을 확보한다는 것이다.
LG전자는 아예 협력업체 경영자들을 중점 육성하는 전략을 펴나가고 있다.
2세 경영자를 비롯해 장차 협력사를 이끌어 나갈 인재들을 대상으로 경영후계자 육성과정을 이수토록 하면서 자사의 전매특허인 혁신이나 6시그마 전수에 본격 나서고 있다.
구본무 LG 회장은 수도권에 위치한 LG전자 정보통신사업부와 LG필립스LCD의 파주 사업단지 인근 협력업체들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육성하라는 지침을 내려 놓고 있다.
SK 역시 그룹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수펙스 추구협의회'를 통해 중소 협력업체들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 방안을 마련해 놓고 있다.
협력사들이 SK 미래 성장의 실질적인 파트너로 커나갈 수 있도록 운영자금 지원부터 기술지도에 이르기까지 전방위 프로그램을 열어 놓고 있다.
최태원 SK㈜ 회장의 경우 지난해 말 "협력업체들이 일시적인 자금난으로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실태를 시시각각 파악해 대응해 나갈 것"을 지시하기도 했다.
이 같은 상생 방안은 포스코 한진 금호 두산 동부 효성 코오롱 등 중견 그룹들로도 빠르게 확산돼 나가고 있다.
과거 그룹별 대항체제가 이제는 그룹-협력사를 묶는 사업간 총력체제로 재편되는 기로이기도 하다.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조사본부장은 "주요 기업들이 협력사와의 상생경영을 본격화해 나갈 경우 우리 경제의 오랜 숙원인 부품·소재 경쟁력 향상도 앞당겨질 것"이라고 말했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