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출가외인

"하늘은 어이하여 높고도 멀며/땅은 어이하여 넓고도 아득한가/천지가 비록 크다 하나/이 한 몸 의탁할 곳이 없구나/차라리 이 강물에 빠져/물고기 배에 장사 지내리." 17세기 후반 선산(지금의 구미)에 살았던 향랑이라는 여인이 지은 시 '산유화(山有花)'다. 향랑은 부모의 강권에 못이겨 시집을 갔으나 남편의 구박에 견딜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어 친정으로 돌아왔으나 출가외인이라 해서 버림을 받았고 외가에서도 받아주지 않아 이 민요를 남기고 결국 자결하고 말았다는 실화다. 조선조 여인의 비극적인 삶은 구미시립도서관에 세워진 시비가 지금까지 전해주고 있다. 이 땅의 여인들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한평생을 시댁과 남편의 그늘속에 살아야 했다. 친정과는 가급적 거리를 둬야 하고 시댁귀신이 되는 것을 당연시 했다. 이토록 여자를 업신여기는 남존여비(男尊女卑)사상은 여필종부(女必從夫)와 삼종지덕(三從之德)을 부녀자의 가장 으뜸되는 덕목으로 각인시켰던 것이다. 여성의 지위가 원래부터 형편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조선 중기까지만 해도 여성의 이혼이나 재혼은 자유스러웠다고 한다. 조선 후기 주자학이 들어오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는 동안 가부장제가 정착되면서 여성에 대한 인식이 싹 바뀌었다고 하니 여성괄시의 역사는 4백년이 된 셈이다. 이 같은 여성에 대한 편견은 민법의 호주제 등에 그대로 반영돼 이를 개정하는 일은 여성계의 최대 숙원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 2일 국회에서 호주제 폐지를 골자로 하는 민정개정안이 통과됨으로써 법상으로는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지위를 누리게 됐다. 여권신장과 함께 결혼관 가족관이 크게 변한 시점에서 호주제 폐지는 뒤늦은 감이 없지도 않다. 이제는 시집가면서 '호적을 파간다'는 말을 역사의 뒤안길에서나 찾아야 할 성싶다. 출가외인이란 이유로 부당한 처우를 받는 일도 크게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여성의 발언권 역시 한층 강해질 것이다. 무엇보다 사회 각 분야에서 거세게 불고 있는 여풍이 호주제 폐지로 더욱 탄력을 받을 것 같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