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봄 일본 경제] (中) 勞 장기불황 탈출 조력자

일본의 대표적 한국통인 후카가와 유키코 도쿄대 교수는 한국경제를 잃어버린 2년이라고 규정했다.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을 빗댄 표현이다. 지난 2년간 한국정부의 일관성없는 정책이 쓸데없는 경제불안을 야기했고,빈익빈부익부적 산업구조가 중견 기업의 설자리를 박탈했다는게 그의 해석이다. 그는 강성노조로 인해 노동시장을 유연화할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한 것은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잃어버린 2년의 중심에 정부와 함께 노사문제를 올려 놓은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 노사관계는 어떠한가. '춘투'는 구문이 돼버린 지 이미 오래다. 올들어서는 사측에서 근로자들의 임금을 올려줘야 한다는 말까지 흘러나온다(요시카와 히로시 내각부 경제재정자문위원).풍부해진 기업 이익을 근로자에게 분배해야 소비가 촉진돼 내수가 보다 강하게 회복될 수 있다는 현실 인식의 반영인 셈이다. 강성노조의 흔적이 여전히 곳곳에 배어있는 우리나라 실정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 일본 산업계에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최근의 일본 노사는 '백지위임' 관계로 보는 게 옳다는 것이 현지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90년대 이후 경제난을 겪으면서 노조가 임금 인상보다는 직업 안정쪽으로 방향을 튼 결과라는 설명이다. 도요타자동차가 매년 사상 최대 이익을 경신하고 있지만 노조 스스로 임금 동결을 제의하고 있는 게 그 예다. 마쓰시마 노리유키 닛코씨티그룹증권 자동차 애널리스트는 도요타 등 일본 자동차 빅3가 GM 등 미국 빅3보다 강한 첫 번째 이유는 미국자동차노조연맹(UAW)과 같은 노동단체가 없기 때문이라고 단언했다. 혼다와 도요타 미국공장이 현지 다른 공장보다 효율적인 것도 그런 이유에서라고 덧붙였다. 그는 한국 자동차업계도 같은 맥락에서 풀이했다. 그의 말을 뒤집으면 일본에서는 노사가 이미 공동운명체가 됐다는 얘기가 된다. 잃어버린 10년의 원인을 제공한 것도 노조며,탈출의 단초를 제공한 것 역시 노조라는 생각이다. 세토 유조 아사히맥주 상담역(일한경제협회 회장)은 기업과 노조는 하나라는 인식이 깊이 뿌리를 내렸다고 자신했다. "근로자들은 과거 격렬한 파업으로 기업이 문을 닫아 힘든 생활을 경험했기 때문에 기업 발전 없이는 생활 안정도 없다는 생각이 확고합니다." 일본의 또 다른 변화는 공무원들의 사고가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일본경제의 최대 걸림돌은 강성노조와 엘리트 공무원의 존재였다. 특히 일본 공무원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좋은 머리로 끊임없이 규제를 양산하며 큰 힘을 발휘해왔다. 하지만 요시카와 위원 등 도쿄에서 만난 일본 관리들은 자신의 최대 임무를 규제 완화라고 거듭 강조했다. 경제가 정치논리에 휘둘리는 현상도 거의 사라진 분위기다. 일본경제를 장기불황의 늪으로 몰아넣었던 노조와 정부는 이제 경제대국의 재건에 새로운 밑거름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도 정부와 노조가 변하지 않으면 잃어버린 2년을 넘어 잃어버린 10년이란 일본의 전철을 밟게 될지도 모른다. 김영규 증권부장 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