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진짜 명품 ‥ 하창조 < ENI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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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창조
여자이기 때문일까. 사업상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가끔 옷차림에 관한 얘기를 듣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같은 차림에 대해 남녀의 평이 상반되는 경우가 있다는 점이다.
나는 대부분은 업무와 관련이 있는 만큼 상대방에 대한 예의상 심플하고 수수한 색상의 슈트를 선호하는 편이다.
그렇게 입고 나가면 간혹 남자분들로부터 “오늘 의상이 참 좋으신데요. 아르마니 것인가요? 잘 어울리십니다.”란 말을 듣는다. 정작 내가 즐겨입는 것은 중저가 국내 브랜드인데도 세계 최고의 브랜드로 봐주며 칭찬해주는 얘길 들으면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그런데 간혹 다른 경우도 있다. 사업 파트너와의 회의가 끝난 뒤 남자들은 술잔을 기울이며 친분을 다지지만 내 경우엔 그러기가 힘들다. 이런 때에 대비해 음악이나 미술 강의를 듣는데, 술 대신 문화예술에 관한 이야기로 사업 얘기를 할 때와는 다른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다.
언젠가 중년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에 등록한 것도 그런 노력의 일환이었다.
미술을 비롯한 문화예술에 관한 내용을 다루는 과정이었는데 3개월쯤 지났을 때였을까. 강의가 끝난 뒤 몇 사람이 커피를 마시며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미술에 대한 소견이나 소장품에 대한 얘기가 오갈때 내가 어떤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고 하자 누군가가 “그 작품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작가명을 잘못 알았겠죠.”하는 게 아닌가.
모임이 끝날 때까지 밝은 얼굴을 유지하려고 애썼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왜 그런 대접을 받았을까’하는 의문이 가시질 않았다.
나중에 같은 자리에 있던 지인으로부터 그 원인이 내 옷차림에 있었는지 모른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의 놀라움이란…. 이른바 명품이란 걸 입지 않은 댓가(?)였다.
옷을 보고 경제력을 평가하는 사람이 있다는 얘길 듣긴 했지만 내가 그 대상이었다는 걸 알았을때의 기분은 뭐라 형용하기 어려웠다.
한때 내로라하는 집 자녀의 결혼식장에 가면 여성 하객중 상당수가 이탈리아의 유명 니트 제품을 입고 있다는 말이 나돌았다. 그 니트의 경우 다소 투박해 잘못 입으면 군인같은 느낌이 나는데도 브랜드 표시가 겉에 있어 과시용으로 입었다는 것이다.
선진 외국의 경우 명품을 원하는 사람들은 브랜드 마크가 옷 안에 감춰진 걸 입고 남들 모르게 혼자 즐긴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선 거꾸로 브랜드를 나타내는 마크나 액세서리 형태의 부착물이 알아보기 쉽게 겉에 있는 옷들이 잘 팔린다는 것이다.
진짜 명품은 남에게 부의 상징처럼 보여지는 화려하고 유명한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잘 어울리고 자연스러운 연출이 가능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