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국제화 전략에 필요한 것들

김인호 최근 '주식보유에 관한 5%룰'의 개정을 둘러싸고 우리의 국제화 의지가 세계시장에서 또한번 시험을 당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물론 이와 관련된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국 언론의 기사는 그 논거나 사실 파악에 있어 상당한 오류가 있어 정부가 강한 반론을 제기한 줄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와는 별개로 그간 우리나라가 끊임없이 표명해온 대외개방,투자환경의 개선 등 우리의 국제화 의지를 국제사회가 충분히 수용하고 평가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또 그 원인이 우리의 각종 제도나 정책,그리고 행태를 정부가 천명하는 국제화 의지에 부합되도록 개선하지 못한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닌지 깊은 반성이 필요한 때다. 우리 경제가 당면하고 있는 많은 대외관련 경제 사회 현안들 중 어느 하나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최근 미국 하버드대 의대가 송도 신도시에 병원설립을 검토했다가 포기하고 대신 상하이와 두바이로 옮겨가도록 만든 의료시장 개방문제,난항에 부닥친 경제자유구역 등에서의 외국교육기관 설립문제, 오래된 현안으로 한미투자협정의 전제조건으로 제시된 스크린쿼터의 폐지 내지 축소문제 등이 그 예다. 여기에 최근에는 높은 외국인 주식보유 비중, 외국인들의 국내기업 인수·합병 등에 대한 비판여론에다 외국자본 폐해론이 제기되는 등 재계와 금융권에 외국자본 배척 분위기마저 일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5%룰의 개정방향이 제시됨으로써 문제가 뒤섞여 버린 감이 없지 않다. 앞에서 언급한 현안들보다 훨씬 더 본질적이고 중요한 우리 내부의 경제운용 과제들도 국제화 방향과는 괴리된 채 진행돼 왔다.우루과이라운드 타결이후 10조원 이상의 농업구조개선자금을 쏟아부었지만 결과적으로 '잃어버린 10년'이 돼버린 농업정책이 대표적인 예다. 칠레와의 최초의 FTA 체결 과정에서 드러낸 국론의 분열과 국정운영 능력의 한계, 그리고 이로 인한 대외신뢰도의 추락이 그렇다. 최근 우리가 겪고 있는 급격한 환율하락과 이에 따른 수출기업의 경쟁력 문제도 시장원리나 국제적인 흐름을 도외시하고 환율을 국내경기의 진작을 위한 정책변수로 활용해온 대내균형 우선 사고의 결과다. 이런 상황에서 한덕수 경제부총리의 취임과 더불어 '선진통상 국가'를 지향한다는 정부의 의지가 표명됐다. 이번 발표는 경제활동과 관련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장벽을 철폐하고 대외협력의 바탕위에서 경제운용을 하겠다는 것으로, 종래보다 훨씬 적극적인 국제화 의지의 표명이다. 지극히 옳은 방향이긴 하지만 정부의 공언이나 의지의 천명으로만 될 일은 아니다. 선진통상 국가로의 길이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한 진정한 선택이 되려면 정부 자신과 국민에 대해 적어도 다음과 같은 몇가지 물음을 던지고 "그렇다"라는 답변을 얻을 수 있어야 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어떤 부문의 개방이 문제로 대두됐을 때 이로 인해 잃게 될 국내시장에만 집착하기보다 해외에서 획득할 새로운 시장을 더 주목할 준비가 돼 있는지? 전체 국익과 부문별 이익이 충돌할 때 전자를 정책결정의 기준으로 삼을 것인지? 개방이 불가피한 선택이고 대세라면 이를 국내 산업의 구조조정을 위한 호기로 활용하려는 의지가 있는지? 거시경제 운용을 함에 있어서 대외균형과 대내균형이 충돌할 때 대외균형을 우선할 각오가 있는지? 대외관련 문제가 발생하고 이해관계 집단의 목소리가 커지더라도 정립된 바른 방향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이들을 설득 교육하겠다는 결심과 실천 의지가 있는지? '한국경제의 국제화'는 여전히 멀고 험난한 길이 아닐 수 없다. 우리의 현재 국제화 수준에 대한 허심탄회한 반성을 바탕으로 이를 위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정부의 의지와 결단이 있어야만 실현될 수 있는 과제다. 이것이야말로 이 시점에 필요한 진정한 국가지도력의 요체다. ihkim@kosb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