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경기 아직 쌀쌀] 등산로 북적대도 주변 음식점 '한산'

최근 경기지표들이 좋아지고 있는 데도 소비경기가 기대에 못미치고 있는 이유로 전문가들은 가계 소비자들의 ‘다이어트형 구매패턴’을 꼽는다. 과거엔 경기가 좋아지면 소비자들의 충동구매나 유행거품에 힘입어 전반적인 소비시장 매출이 늘어나게 마련이었지만, 주머니사정이 좋아져도 자신이 선호하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철저히 선별해서 쇼핑하는 계획구매형으로 소비스타일이 확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등산로 입구,김밥장사 파리 날리고 과도(칼)만 잘 팔려 서울의 대표적 산행코스인 관악산의 주간 입장객수는 작년에 비해 평균 1만여명이나 늘었다. 하지만 등산로 입구 음식점들의 매상고는 별반 늘지 않았다. 4만여명의 인파가 몰렸던 지난 17일. 이 곳에서 9년째 식당업을 하고 있는 정순임씨(56)는 "올들어 등산객이 부쩍 늘어나는 것을 보고 식당매상이 오를 것으로 잔뜩 기대했었는데 김샜다"고 하소연했다. 식당 옆에서 김밥가게를 하는 박주희씨(46)는 "요새는 등산만 할 뿐 가게에서 사먹지를 않는다"며 "김밥부터 과일까지 집에서 가져오는 짠돌이 등산객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등산장비를 팔고 있는 김모씨는 "장비매출은 늘지 않고 집에서 가져온 과일 깎을 칼을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정도"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신림시장 입구에서 등산복 땡처리가게를 하고 있는 장금종씨는 "땡처리는 '박리다매'로 하는데 '박리'만 남고 '다매'가 사라진 게 요즈음 장사"라며 "예전엔 고객들이 싼맛에 당장 필요없어도 사갔는데 요새는 턱도 없는 얘기"라고 말했다. ○야구장 관객은 늘어도 오징어 장사는 한산 서울 잠실 야구장. 봄 시즌을 맞아 이곳을 홈구장으로 사용하고 있는 두산 베어스는 올들어 경기마다 평균 1만4천여명의 관중을 동원하고 있다. 구단 관계자는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경기마다 평균 2천5백여명 정도 늘어나는 것으로 봐선 경기가 차츰 풀리는 조짐"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이 곳 입구에서 10년 넘게 오징어 음료수를 팔고 있는 박경희씨(여?36)는 "요즘은 자기가 좋아하는 경기만 보고 갈 뿐 몰래 소주를 들여오거나 오징어를 사는 손님들이 줄어들고 있다"고 전했다. 한달에 한번꼴로 가족과 함께 구장을 찾는다는 야구팬 배광혁씨(서울 사당동)는 "야구장 입장료에다 주차료까지 5만원 정도 드는데 부담을 줄이기 위해 먹거리는 집에서 가져오는 편"이라고 말했다. ○상가 자동문, 엘리베이터 전기료는 늘었는데 매출은 기대에 못미쳐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변역에 있는 전자상가 테크노마트. 상인들은 한결같이 "고객들이 제법 눈에 띄지만 선뜻 지갑을 여는 모습은 드물다"고 말한다. 상가 기계설비팀 직원은 "예전엔 자동문 엘리베이터 전기료가 늘어나면 손님이 많이 들락날락해서 장사가 잘 된다는 것을 전기실에 앉아서도 가늠할 수 있었는데 요새는 그것도 안통한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올들어 고객이 늘어나면서 각종 시설 전기요금이 5% 안팎으로 늘어났지만 매출은 품목과 점포에 따라 1∼2% 정도 미미하게 늘어났거나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형편이다. 상가를 찾기는 하지만 막상 쇼핑으로 이어지는 '진성 고객(?)'이 기대 이하라는 얘기다. 테크노마트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처리하는 삼오용역회사 직원은 "에어컨 박스만 쏟아지는 걸로 봐서 봄철 주문판매로 성수기에 비해 싸게 살 수 있는 에어컨만 팔린다는 얘기"라며 "경기가 풀린다고 하지만 소비자들이 짠돌이 알뜰 쇼핑만 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3층에서 가전매장을 운영 중인 박영훈씨(43)는 "예전에 봄철이면 혼수특수라는 게 있었는데 요새는 혼수준비도 한꺼번에 하지않는 추세"라고 전했다. 상가음식점 상인들은 "종전엔 전자제품을 사러왔다가 외식도 하고 갔지만 요즘엔 필요한 쇼핑 외에 다른 소비는 하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예산을 미리 짜서 나오는 선진국형 '계획쇼핑족'이 늘고 있다는 얘기다. 차기현.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