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22일자) 과거분식 사면 좀더 확실하게

대한항공이 7백19억원에 달하는 과거 분식회계(粉飾會計) 사실을 스스로 밝힌 것은 기업회계의 투명성 확립을 위한 첫걸음이란 점에서 평가할 만한 일이라고 본다. 이번 '고해성사'는 특히 증권집단소송 대상 기업중 처음으로 이뤄진 것일 뿐 아니라 향후 기업들의 움직임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 틀림없는 까닭이다. 대한항공은 현재 감독당국의 감리를 받고 있는 상태이지만 분식사실에 대한 사전공개가 이뤄진 만큼 다음달 11일 열리는 증권선물위원회에서 제재조치가 내려지더라도 징계수위는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금감위는 과거분식회계를 기업이 자발적으로 수정하면 내년말까지 감리를 면제하고 감리가 진행중인 기업에 대해선 제재조치를 경감하겠다는 방침을 이미 밝혀 놓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번 분식사실 공개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대한항공에 대한 징계여부가 아니다. 과연 이번 일을 계기로 기업들의 과거분식회계 정리가 정말 본격화될 수 있을 것이냐 하는 점이다. 사실 우리 기업들은 은행대출을 얻기 위해서,또는 정치자금을 제공하기 위해서 등 이런저런 이유로 편법적인 회계처리를 해온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우리는 불가피하게 이뤄진 과거의 분식에 대한 사면(赦免)이 이뤄지지 않고는 앞으로의 회계 투명성 확보도 불가능하다고 보고 과거분식에 대한 사면이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누차 강조해 온 바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대한항공의 분식사실 사전공개는 회계투명성 확보를 위한 새로운 계기를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실제 기업들의 과거분식 공개가 줄을 이을 것으로 낙관하기는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과거분식회계가 2년 동안 집단소송대상에서 제외되고 금융당국도 감리 면제 등의 조치를 취해 기업들의 부담이 크게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민·형사소송에 대한 부담이 여전히 기업과 기업인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까닭이다. 때문에 과거분식회계 정리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선 민·형사상 책임의 면제 등 보다 과감한 사면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증권집단소송법의 목적이 기업을 처벌하거나 회사를 망하게 하는데 있는게 아니라 기업회계 투명성을 높이는데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러하다. 만일 기업들이 민·형사소송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과거의 잘못을 끝내 바로잡지 못한다면 실로 어려운 과정을 거쳐 마련된 고해성사의 기회도 아무런 실효를 거두지 못하는 결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