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쿨 비즈
입력
수정
논어 향당(鄕黨)편엔 공자의 옷차림에 관한 대목이 나온다. '평상복은 붉은색과 자주색으로 만들지 않는다. 여름엔 겉에 삼베옷을 걸쳐 입고, 검은 옷엔 염소 털옷,흰 옷엔 사슴 가죽옷, 누런 옷엔 여우 털옷을 갖춰 입는다. 오른쪽 소매를 왼쪽 소매보다 짧게 만들고, 잠옷은 키의 1.5배로 만든다.'
그런가 하면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 왕의 시종이자 오필리어의 아버지인 폴로니우스는 아들 레어티스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주머니가 허락하는 한 옷을 잘 입어라. 부자처럼 보이되 사치스러운 느낌은 주지 말라. 사람들은 종종 옷차림으로 상대방을 판단한다. 특히 최고 계층 사람들은 그렇다.'
공자와 셰익스피어가 강조한 데서 보듯 옷의 힘은 막강하다. 옷은 보는 사람은 물론 입는 사람의 마음과 태도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제복은 전문성과 권위 책임을 함께 드러내고, 바지를 입으면 치마 차림일 때보다 보폭이 커진다. 남녀 모두 정장과 캐주얼 복장일 때의 자세는 분명 다르다.
문제는 시간 장소 경우에 상관없이 지나치게 격식을 앞세우는 것이다. 한여름에도 넥타이에 양복 상의까지 걸친 채 출근하도록 하고, 이리저리 움직여야 하는 지하철 여승무원에게 치마정장을 입힌다. 뿐이랴. 덥고 습한 여름에도 중·고교 남학생들에게 다리에 휘감기는 합성섬유 긴 바지를 강요한다.
일본 정부가 올여름 각료를 비롯한 공무원들의 복장을 노타이 차림인 '쿨 비즈(Cool Biz)'로 정했다는 소식이다. 시원하게 입고 에어컨을 덜 틀어 교토의정서의 지구온난화 가스 배출도 줄일 겸 외국손님 접대나 공식행사 외엔 모두 양복상의와 넥타이 없이 지내기로 했다는 것이다.
넥타이를 매거나 정장을 반듯하게 차려 입으면 깔끔, 단정하고 좀더 긴장하게 되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일상이 바뀌어야 일도 바뀐다'는 말처럼 격식이 자유로운 사고를 방해하는 것도 틀림없다. 한여름만이라도 넥타이를 풀면 에너지도 줄이고 생각의 틀도 바꿀 수 있을지 모른다. 윗사람이 양복차림을 고집하지 않으면 아랫사람이 애써 입을 일은 없을 것이다. 남학생들에겐 신축성 있는 면스판덱스 반바지를 입히고.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