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지금이 변할 때다] (12ㆍ끝) 노사관계 혁신을 위한 제언

지난해 말 KT가 신노사문화대상을 받았을때 노동계 주변에선 모두들 고개를 갸우뚱거렸다.“해마다 노조의 강경투쟁으로 골머리를 앓던 회사가 어떻게 그런 상을 탈 수 있었느냐”는 의문이다.하지만 정답은 간단하다.노조가 변했기 때문이다. 노조는 과거의 투쟁노선을 접고 상생의 노사문화를 일구며 파이 키우기에 관심을 쏟았다.허진 KT 노조 교육선전실장은 “변화하지 않으면 살아남을수 없다는 시대적 흐름에 맞춰 투쟁 대신 대화와 협력을 통해 회사 경쟁력향상에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투쟁노선을 버려라=지금 노동현장에는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일부 대기업 노조들의 전투적 조합주의에도 불구,실리주의 성향의 온건노선이 전반적인 현장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다. 글로벌 시대를 맞아 경제전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내몫 찾기에만 몰두했다가는 노사 모두 공멸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노조의 혁신을 유도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한때 강경투쟁을 벌였던 대기업 노조들이 잇따라 투쟁대열에서 이탈한 뒤 기업 경쟁력 향상에 앞장서고 있다. 강성 노동운동의 상징이었던 현대중공업 노조는 1990년대 중반 이후 파업투쟁 대신 회사 성장으로 눈을 돌렸다. 노조가 일감 수주에 앞장서는 것은 이제 새로운 얘기도 아니다. 지난 1월에는 이 회사 노조위원장이 미국의 엑슨모빌사에 해상정유공장을 발주한 데 대해 감사의 편지를 보냈다. "큰 공사를 맡겨줘 감사하다. 앞으로 어떤 공사를 맡기더라도 최고의 품질을 책임지겠다"는 내용이었다. 박삼현 현대중 노조 수석부위원장은 "노사가 싸우며 소모전을 하면 다른 회사와의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며 "회사가 성장하면 근로자의 고용이 안정되고 파이가 커지는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도 막무가내식 파업을 벌이는 강성 노조들이 노동계 내 지배세력으로 활동하며 노동현장을 투쟁의 장으로 몰아넣고 있다. '노조,지금이 변할 때다'란 시리즈를 시작한 이후 한국경제신문에 "노조의 불법 파업현장을 낱낱이 취재해 국민들에게 알려달라"는 독자들의 주문이 쇄도한 것도 이러한 현장분위기를 반영했다고 볼 수 있다. 독자들은 "노조의 파업에 더 이상 못 참겠다" "파업을 부추기는 상급 노동단체는 없앨 수 없나" 등 다양한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이제 투쟁의 운동노선에서 과감히 탈피할 때다. 현대중공업이나 KT가 강경투쟁에서 협력적 노사관계로 돌아선 것도 경쟁력만이 살 길이라는 시대적 흐름을 읽었기 때문이다. 최영기 한국노동연구원장은 "글로벌 경쟁시대를 맞아 노사관계가 변하지 않으면 국민경제에 큰 장애를 초래할 수 있다"며 "이제는 노조도 임금과 고용문제에만 집착하지 말고 인적자원 개발에도 관심을 쏟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법과 원칙을 준수하라=노동현장에 가장 필요한 게 법과 원칙이다. 법과 원칙이 실종되고 대화와 타협만을 강조하다 보면 불법파업이 판치게 된다. 강성노조들이 과거의 투쟁노선을 버리고 협력적 노사관계를 모색하게 된 데는 '법대로'가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힌다. 불법파업 등에 대해 법과 원칙대로 처리할 경우 "무언가 더 얻을 수 있다"는 노조원들의 막연한 기대심리를 없앨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야 막무가내식 파업도 줄어들어 상생의 노사문화가 확산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박영범 한성대 교수는 "불법파업은 법과 원칙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을 경우 확산될 수 있다"며 "법과 원칙을 어길 경우 확실하게 책임을 물어야 무분별한 파업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뢰경영을 펼쳐라=일등하는 기업들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사용자가 열린 경영을 펼침으로써 노조원들의 변화를 이끈다는 것이다. 잘나가는 기업들의 공통점은 경영진이 종업원 존중을 최고의 경영철학으로 삼는다는 점이다. 그래야 노사간 신뢰도 쌓이고 일할 의욕도 생기기 때문이다. 이들 기업에서는 괜한 문제를 둘러싸고 노사가 싸우는 일은 거의 없다. LG전자 유한킴벌리 롯데삼강 삼성전자 포스코 등 국내 초우량기업들을 보면 종업원들을 대할 때 사용자들의 지극한 정성이 배어 있다. 근로자를 한 배를 탄 동반자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투명경영,참여경영을 통해 근로의욕을 복돋우고 있다. 이제는 사용자가 기업을 불가침의 사유재산으로 생각하거나 근로자를 아랫사람으로 생각하는 전근대적 관행은 하루빨리 버려야 할 악습이다. ○법.제도 선진화 필요한가=정부는 국내 노사관계를 고치기 위한 방안 중 하나로 노사 법.제도(노사로드맵) 개선을 서두르고 있다. 이 방안에는 파업기간 중 대체근로 허용(공익사업장),불법파업에 맞선 직장폐쇄 허용,손배.가압류 남용 제한,복수노조 창구단일화 방안 마련,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등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많은 노동경제학자들은 국내 노동운동의 폐해를 막기 위해선 법.제도의 개선보다는 의식과 관행을 고치는 것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아무리 법과 제도를 바꿔봐야 의식과 관행이 고쳐지지 않는 한 노동운동 행태가 전혀 달라지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다. 괜히 노사간에 예민한 법과 제도를 개선할 경우 오히려 이를 둘러싼 노사갈등만 부추길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실제로 정부가 중점적으로 추진 중인 단위사업장 내 복수노조가 도입될 경우 노동현장에는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지금도 노조 내 여러 분파가 선명성 경쟁을 하며 생산분위기를 해치고 있는데 법으로 복수노조를 인정할 경우 조직 확대를 둘러싼 극심한 투쟁이 불가피할 것이란 분석이다. 이 때문에 재계는 물론 노동계 일각에서도 복수노조 시행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