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공짜 에너지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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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에 '공짜 점심은 없다'는 말이 있다. 많은 이들은 이 말이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에게서 처음 나왔다고 하지만 그 출처에 대한 정설은 없다. 어쨌든 오늘날 이 말은 그 어느 것도 공짜로 얻을 수 없다는 뜻으로 널리 인용되고 있다.
국제 유가가 어디까지 치솟을지 에너지 문제가 심각해져만 가는 요즘 같아선 이 말이 달리 표현됐으면 어떨까 싶다. '공짜 에너지는 절대 없다'고. 에너지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보면 그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 볼 수 있도록 말이다.
외신에 따르면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에너지 정책을 '이기적(selfish)' '멍청한(dumb) 경제학' 등의 표현을 사용하며 비판했다고 한다. 교토의정서 탈퇴 등 부시 행정부의 일련의 에너지 정책이 과거 클린턴 행정부의 그것과 크게 달라진 것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클린턴 전 대통령으로선 부시 대통령의 너무도 현실지향적 태도가 못마땅했을지 모른다.
그런 부시 대통령이 이번엔 민간 원전 건설을 재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가 말한 대로 되면 미국은 원전 건설을 중단한 지 30여년 만에 에너지 정책의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미국은 현재 발전량의 원전 의존도가 20% 정도지만 '경제 활성화의 발목을 잡는 고유가' '아직은 손에 잡히지 않는 대체에너지' 그리고 '교토의정서 탈퇴에 대한 곱지 않은 국제적 시선' 등을 감안하면 원전 외에 달리 대안이 있을 것 같지도 않다.
따지고 보면 에너지 문제만큼 현실적으로 생각해 봐야 할 것도 없는 것 같다. 1988년 스웨덴 국회는 2010년까지 모든 원전의 운영 중지를 결정한 적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국민의 복지와 고용수준 유지' '대체에너지 개발' 등의 조건부였다. 지금으로서는 그런 조건을 충족시키기 어렵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한다. 스웨덴은 현재 발전량의 50%를 원전에 의존하고 있다. 발전량의 78% 이상을 원전에 의존하고 있는 프랑스 역시 '에너지 자원의 해외 의존도 최소화'라는 절박한 이유가 크게 작용했다. 일본도 같은 이유로 현재 건설 중인 5기의 원전 말고도 6기를 계획 중이다.
절박함으로 치면 우리는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 97%에 달하는 에너지의 대외의존도 측면에서도 그렇고,대체에너지 개발능력 측면에서도 그렇다. 대체에너지를 준비해 나가야겠지만 그것이 현실적 대안으로 부상하기도 전에 에너지 공급에 이상이 생기면 지금과 같은 복지와 고용수준조차 유지할 수 없다는 점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는 처지다. 고유가 상황에서도 전기를 싸게 쓸 수 있는 것은 한마디로 발전량의 40%를 차지하고 있는 원전 덕분이다. 이 점은 그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문제는 늘어만 가는 에너지 수요를 어떻게 총족할 것인가에 있다. 원전보다 더 나은 현실적 대안도 없으면서 환경단체나 반핵단체들이 반(反)원전을 외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그들이 원전 포기에 따른 비용을 모두 지불할 것도 아니고 보면 더욱 그렇다.
그런 논란보다는 원전 사용에 따른 '사회적 책임'에 눈을 돌리는 일이 더 절실해 보인다. 원전의 이익은 향유하면서 그 부산물인 원전수거물 처리장(방폐장) 하나 선정 못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우리 사회이고 보면 이보다 더 시급한 과제도 없다. 우리 국민들의 과학적 이해나 인식이 미국 프랑스 일본 스웨덴 국민들보다 못하다고 할 근거는 없다. 정부에 대한 불신,환경단체나 반핵단체들의 일방적 얘기들일랑 잠시 접어놓고 우리 스스로 에너지 문제를 냉정히 생각해 보면 답은 자명해진다.
안현실 논설위원ㆍ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