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코너] 자부심 강한 日부자

선진국들 가운데 일본 만큼 소득 격차가 적은 나라도 드물다. 실제 전국민의 90%가 스스로를 '중류층'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런 일본에서 10년 이상 계속됐던 장기불황을 겪은 부자들의 가치관 변화를 보여주는 연구 결과가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부자학 연구의 권위자인 다치바나키 도시아키 교토대 경제학과 교수(일본경제학회 회장)와 그의 제자 모리 다케시 고난대 교수가 공동으로 최근 출간한 '일본의 부자연구'란 책이 바로 그 것이다. 두 교수가 연간 1억엔(약 10억원) 이상의 수입을 수년간 유지하고 있는 고소득자 2천명을 직접 조사해 펴낸 이 책은 베일에 가려져 왔던 일본 부자들의 실태와 인식변화를 잘 정리하고 있다. 관심을 끄는 것은 일본부자들의 가치관이다. '경제적 성공에 부모의 유산이 도움이 됐느냐'는 질문에 대해 '그렇지 않다'는 응답이 58%로 '그렇다(7%)'보다 훨씬 많았다. 일본부자들은 자기 힘으로 성공했다는 자부심이 강하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해서 일본부자들의 서민층에 대한 시각도 흥미롭다. '저소득자를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 대해 '사회에 책임이 있다'는 답변은 10%에 불과한 반면 '본인이 열심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응답은 40%나 됐다. 집단 의식이 강한 일본에서도 장기 불황과 구조조정을 겪으면서 '가난은 개인책임'이라는 자본주의적 인식이 강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또 '5년전과 비교해 재산이 늘었는가'란 질문에 대해선 60% 이상이 '그렇다'라고 답변해 일본부자들은 불황속에서도 꾸준히 재산을 늘려온 것으로 조사됐다. 불황 여파로 일반인들은 적금 통장까지 깨는 현실에 비춰볼 때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일본부자들의 대표적인 2대 직업은 기업가와 의사로 나타났다. 이중 기업가의 직종은 많이 달라졌다. 20년전만 해도 중후장대한 제조업,토목건축,유통업,부동산 임대업,교통관련 회사 경영자가 많았으나 최근에는 정보통신,화장품,음식체인,컨설턴트,소비자금융업 등을 경영하는 기업가들이 늘어나는 추세로 조사됐다. 도쿄=최인한 특파원 jan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