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경제특구 하긴 하나"


정부가 추진 중인 동북아 경제허브 전략의 핵심인 경제자유구역(경제특구) 외국인 투자유치 사업이 삐걱거리고 있다. 가장 먼저 '첨단 정보 및 국제 물류 비즈니스 지역'으로 지정돼 부산 광양에 비해 앞서가고 있다는 인천 경제특구조차 지정된 지 3년째를 맞고 있지만 외국인 투자가 늘어나기는커녕 이미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개발 프로젝트마저 무산되고 있다.


인천 송도신도시의 디지털 게임영상 단지(DEC) 프로젝트가 대표적인 실패 사례다. 마이크로소프트(MS)와 휴렛팩커드(HP),썬마이크로시스템즈,영우엔어소시에이트, KT,LG CNS 등 국내외 6개 IT(정보기술) 기업으로 구성된 컨소시엄은 게임영상 단지를 조성하기 위해 10억달러 규모의 양해각서를 인천경제자유구역청과 체결하고 6개월 후 본계약을 맺기로 합의했었다.
그러나 컨소시엄이 단지 개발 계획 등을 놓고 인천시 및 인천특구청과의 의견차를 좁히지 못해 본계약 시한을 넘기는 바람에 DEC 프로젝트는 사실상 물거품이 됐다. 특구청 관계자는 "컨소시엄측은 수익성 보장을 위해 주거시설 개발 허용 등을 요구했으나 인천시측은 단지 구상과 부합하지 않는다며 거부,결국 본계약 시한이 지나 버렸다"고 말했다.


인천특구는 지금까지 투자유치 활동을 통해 17건 총 207억달러 규모의 투자 양해각서와 투자의향서를 체결했지만 실제 투자 실적은 미미하다.


투자가 성사된 사업은 영국 아멕사가 투자한 제2연륙교(송도~인천국제공항),미국 신약 개발회사인 벡스젠과 KT&G의 합작회사 셀트리온(투자금액 1억5000만달러)의 신약 공장 및 연구시설,미국 게일사와 포스코건설이 공동 추진하는 송도 국제업무지구 등이 전부다. 하지만 국제업무지구 사업은 초기 투자만 성사됐을 뿐 추가 투자 전망은 극히 불투명한 실정이다.
이처럼 외국인 투자가 지지부진한 것은 중국 등 경쟁국의 경쟁특구와는 달리 첨단 제조업에 한해 세금 감면 혜택이 있을 뿐 정보기술 물류 건설 등 대부분의 투자 업종은 세금 감면 등 인센티브가 없는 데다 국고 지원이 거의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경제자유구역청이 인천시의 산하 기관이어서 결정 권한이 극히 미약하기 때문에 공장 건립 문제 등 업무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중앙부처와 지자체로부터 복잡한 행정 인·허가 및 관련 심의를 일일이 받아야 하는 실정이다.


금융서비스에 대한 불만도 크다. 셀트리온의 고위 간부는 "얼마 전 송도의 신약 공장 및 연구시설 준공을 앞두고 국내에서 파이낸싱을 추진했지만 공장 준공 허가가 아직 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절당하는 수모를 겪었다"며 "1500억원 이상을 투입한 다국적 기업에 파이낸싱을 할 수 없다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처럼 국내 경제특구들이 각종 규제와 비효율적인 행정체제를 정비하지 못해 외국인 투자유치에 난항을 거듭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경쟁 상대인 중국의 경제특구들은 멀찌감치 앞서 나가고 있다. 상하이 특구의 경우 우선 특구청이 외부의 간섭을 거의 받지 않고 명실상부한 '원 스톱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외자유치 사업이 일사천리식으로 이뤄진다.


국내 대기업인 P사의 경우 지난해 상하이에서 제철사업을 추진했지만 투자유치 업종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투자를 포기할 뻔했다.


그러나 상하이시가 단시일 내에 조례를 개정해 법인 설립까지 직접 도와주자 투자를 결정했다.
P사 간부는 "외국인들 사이에 우리 경제특구는 절차가 복잡하고 협의가 늦어 원스톱은 커녕 원 모어 서비스(one-more-service)라는 비아냥이 나온다"고 전했다.


경제특구사업이 이처럼 지지부진한 근본 요인은 현 정부 출범 이후 지역 균형발전론이 압도하는 분위기로 인해 인천특구에 대한 수도권 규제가 풀리지 않고 외자유치를 위한 특구 서비스 개선 등이 뒷전으로 밀려버렸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재경부 인천시 특구청 등 경제특구사업을 책임진 관계기관들보다 외국 기업과 경제특구의 합작 투자사업을 추진해온 국내 관련 기업들이 더 안절부절하는 실정이다.


이들 국내 관련 기업은 행정규제 등으로 외국인 투자 파트너들이 떠나가는 사태를 막기 위해 국회까지 찾아가서 규제완화와 '원 스톱 행정서비스 실현'을 하소연하는등 동분서주하고 있다.


중국에서 투자활동을 하고 있는 국내 기업인들은 "이미 중국 상하이는 따라 잡을 수 없을 만큼 앞서 있으며 우리 특구는 칭다오와 겨뤄야 할 판"이라고 개탄했다.


외국인 투자와 관련된 중앙정부의 미온적인 태도와 비능률은 국제사회에서도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지난 5일부터 9일까지 영국 런던과 미국 뉴욕에서 국가설명회(IR)에 나섰던 한덕수 경제부총리는 해외 투자자들로부터 호된 비판을 받았다.


답보 상태를 못 벗어나고 있는 동북아 허브 계획 등이 주된 비판 내용이었다.


영국의 한 투자자는 "1년 전 설명회 때도 아시아 금융중심지를 만들겠다고 했는데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며 "구호만 앞서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경제자유구역청의 운영관리도 비효율적이다.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청의 경우 부산시와 경남도가 공동으로 관리 운영하다 보니 두 기관의 의견차로 아직까지 투자구역(투자 행정구역)과 내년부터 개항하는 부산지역 신항만의 이름조차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김인완 기자 iy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