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관세와 자율

김용덕 관세청이 지난해 거둔 세금은 32조원가량이다. 국가 운영 자금의 4분의 1을 관세청에서 징수한 돈으로 충당한 셈이다. 관세청이 징수하고 있는 세금의 거의 전부가 기업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일반 국민은 관세에 대해 피부로 느끼지 못할 뿐이다. 관세청 역시 과거에는 기업들이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세무조사를 했다. 세무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기업 활동은 중단되다시피 했고 기업에 대한 대외신인도 역시 추락했다. 그러나 기업 경쟁력이 곧 국가 경쟁력인 글로벌시대에 이 같은 관행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기업은 국가에 세금을 내고 국가는 거둔 세금으로 더욱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가는 상생의 시대인 것이다. 세무 조사를 해보면 대부분의 기업이 성실하게 세금을 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지 않은 기업도 세금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거나 담당자의 단순 착오로 인한 것이 대부분이다. 관세청은 지난해 3월부터 기업이 신고한 내용을 스스로 심사할 수 있는 '자율심사제도'를 도입,시행하고 있다. 이 제도를 시행해 온 지난 1년은 불안과 기대가 교차하는 한 해였다. 사실 기업이 신고한 세금이 정확한지를 확인하는 권한은 국가기관이 담당해야 하는 것인데 기업이 스스로 심사했을 때 과연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올 수 있을 것인지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자율심사제도는 성공적으로 정착하고 있다. 지난해 자율심사 기업으로 지정된 60개 기업이 스스로 판단해 추가로 납부한 세금이 277억원에 달했다. 이는 2003년도 세관에서 기업을 직접 심사해 추가 징수한 세금 57억원보다 5배가량 늘어난 규모다. 그리고 기업에서는 자율심사제도에 따라 세관의 간섭이 거의 없어져 경영의 안정성이 상당히 높아졌다고 평가하고 있다. 지난해 성과를 토대로 올해는 108개 기업을 자율심사 기업으로 추가 지정,자율심사 기업은 모두 168개로 늘어났다. 이들 기업의 수입 규모는 810억달러로 우리나라 전체 수입 규모의 36.1%를 차지한다. 자율심사제도의 시행은 기업과 세관이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한 차원 높은 납세 문화를 만들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이런 노력들이 세금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조금이라도 벗겨주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