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명이 경쟁력이다] 한국발명 40년 발자취…'최초'에서 '최고'로 우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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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업입국을 위한 기업발명 태동(60∼80년대 초)
1960년대 이후 경제개발이 본격화되면서 기업들도 차츰 연구개발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물론 기업들은 원천 특허 발명을 하기에는 무리가 많았으며 외국의 기술들을 개량하는 차원에서 실용신안 수준 기술개발에 그쳤다. 그나마 74년 국내에서 정식으로 공업소유권이 확정되기까지는 1년에 1만건의 특허를 넘지 못했다. 국내기업 보다는 정부출연연구소와 외국기업들 중심으로 발명이 이뤄졌다.
이 때를 대표하는 발명품으로는 코오롱의 나일론이 꼽힌다. 나일론의 국산화는 한국 섬유산업의 경쟁력을 제고하는 데 기여했다. 66년 LG전자(당시 금성사)가 선보인 최초의 국산 흑백TV도 한국 가전산업의 가능성을 활짝 열어놓았으며 83년 LG화학(당시 럭키)이 개발한 PBT수지는 한국 화학산업의 일대 전기를 마련했다.
◆기업 주도 발명 시기(80년대말∼90년대말)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국내 발명은 기업중심으로 크게 변화했다. 1989년까지 거래소 상장 기업의 특허 출원비중은 50%를 넘지 못했으나 90년대부터 기업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1987년 물질특허제도가 도입되고 반도체를 둘러싼 특허분쟁이 시작되면서 기업들의 발명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게 된 때문이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기업들은 80년대 후반 들어 특허전담부서를 만들고 직원들의 발명을 장려하는 한편 특허보호를 위한 각종 전략을 세우기 시작했다.
이에 힘입어 90년대에는 기업들의 특허 출원이 비약적으로 증가,90년대말에는 국내 특허가 4만건을 돌파하는 원동력이 됐다. 이 당시 기업들의 특허 수는 5배 이상 증가했다. 그러나 양적인 측면에서만 증가했지 질적인 면에서 핵심적인 특허가 없다는 게 기업의 또 다른 고민이 된 시기이기도 했다.
◆양적인 증가에서 질적 강화시기(2000년대초∼)
2000년대 들어 기업들은 전체 특허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등 국내 발명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다. 더욱이 연구개발이 기업전략의 핵심으로 부상하면서 원천발명 등 핵심 기술개발에 기업들이 적극 나서고 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원천 특허 보호를 강화하는 한편 직무발명 보상제도 도입 등을 통해 연구원들의 연구개발 노력을 부추기고 있다. 특히 대기업 뿐 아니라 중소기업들도 특허담당을 두고 연구개발을 장려하는 등 새로운 차원에서 연구원들의 발명 진작 및 특허보호가 이뤄지는 추세다.
기업들은 이제 기업 간 특허 공유 및 해외 특허출원 등의 활동을 통해 글로벌 기업경쟁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