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기업윤리 표준화 탄력운용을

노한균 최근 국내외를 막론하고 기업의 윤리적 측면을 강조하는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기업 윤리와 윤리 경영,사회적 책임,기업의 시민의식 등 용어만 다를 뿐 지향하는 목표는 동일하다. 현재 기업 윤리와 관련돼 진행되고 있는 국제적인 논제의 하나는 국제표준화기구(ISO)의 사회적 책임 표준화 작업이다. ISO는 올 2월 회의에서 '사회적 책임에 관한 지침'을 표준화하는 작업을 2008년까지 마치기로 했다. 품질 관리와 환경 관리에 이어 기업의 사회적 책임마저 표준화되는 시대를 눈앞에 둔 셈이다. 기업윤리 전문가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윤리적인 내용을 어떻게 표준화할 수 있는가'에 대해 의문을 갖게 마련이다. 일반적으로 표준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최소한의 요구 수준에 자발적으로 맞추겠다는 약속인데, 문제는 윤리적 행동의 최소 수준을 정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2000년 유엔이 기업의 윤리적 행동을 확산시키기 위해 시작한 글로벌 콤팩트를 예로 들어 보자. 글로벌 콤팩트의 제1원칙은 '국제적으로 인정된 인권보호 활동을 지원하거나 존중한다'는 것이다. 사회가 보호할 최소한의 인권과 보호 장치는 법에 의해 규정돼 있다. 그렇다면 현행법의 수준을 넘어서는 '표준'으로 보호할 최소한의 인권이란 무엇인가. 기업이 최소 수준을 맞춘다면 사회적 책임을 다한 것인가. 이같은 일련의 질문들은 표준화가 윤리적 행동의 '내용'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는 논점에 근거를 두고 있다. ISO는 사회적으로 책임 있는 기업이 현행법보다 높은 수준에서 지켜야 할 최소 수준의 인권보호 지원활동을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ISO가 진행하고 있는 표준화 접근방식은 행동의 '내용'보다는 '과정'에 중점을 두고 있다. '무엇이 사회적 책임인가'라는 주제보다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 문제가 제기될 때 이를 적절히 다룰 수 있는 '관리체제(management system)' 구성에 관심을 두고 있다. 기업이 인권보호 지원활동에 대한 의사 결정을 할 때 어떻게 이해관계자들을 찾아내고, 어떻게 그들을 기업의 의사결정 과정에 포함시키며, 어떻게 의견을 교환할 것인지 등을 다루는 것이다. 이같은 ISO의 접근방식은 기업 윤리에 관한 국제적 논의에 새로운 기여를 하게 될 것이다. 그동안 기업을 포함한 사회 주체들이 준수해야 하는 윤리적 행동의 '내용'에 대해서는 1948년 유엔 인권헌장을 비롯해 수많은 제안들이 있었다. 그러나 윤리적 원칙들을 안다는 것이 반드시 개인이나 조직의 윤리적 수준을 높이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원칙들이 행동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수많은 윤리적 문제들을 어떤 방식으로 파악하고 분석해서 대응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중요하다. 그러나 관리체제의 표준화 작업이 기업의 윤리 수준을 반드시 높이는 것은 아니다. 진정으로 기업 활동과 윤리적 요소를 결합하고자 한다면 표준 제정과 함께 이후 운영 과정을 통해 적어도 다음의 두가지 사항에 주의하여야 한다. 첫째는 관리체제를 지나치게 경직되게 운영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관리체제가 지나치게 세분화되거나 경직되게 운영되면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개인의 윤리적 자율성과 자유 의지를 제한할 위험이 있다. 기업 윤리성 제고의 핵심은 조직과 구성원의 도덕적 가치 사이에 건전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는 데 있다. 황금 분할을 찾기는 어렵지만 개인에게 자율성을 부여하면서도 기본 수준을 유지하는 융통성 있는 관리체제 운영이 필요하다. 둘째, ISO 표준이 형식적으로 수용되어서는 안된다. 우리가 쉽게 잊는 사실은 윤리적이고자 하는 의지가 없이는 윤리적일 수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잘 만들어진 표준이라 하더라도 지도자를 포함한 조직 구성원 간에 윤리적이고자 하는 의지나 어려운 결정을 행동으로 옮기려는 진정한 용기가 공유되지 않는다면 기업 윤리를 표준화하려는 시도는 단순한 치장에 불과할 뿐이다. /ISO 사회적 책임 표준화 작업반 한국측 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