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적 파괴'가 기업흥망 가른다..'미래기업의 조건'

'끊임없이 이어지는 문제해결 과정,지속적인 원가 혁신,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일하는 직원들,높은 시장점유율,과감한 투자,경쟁사보다 빠른 제품 시판….' 업계 1위 기업들의 모습이다. 그러나 이처럼 잘나가던 기업들 역시 후발주자에게 선두를 내주고 시장에서 퇴출된다. 40년 전 포천 500대 기업 중 현재도 순위에 들어 있는 기업들은 30%에 불과하다. 후발 기업이 선도 기업을 추월하여 무너뜨린 이야기는 구약 성서에 나오는 골리앗을 이긴 다윗의 일화처럼 언제 들어도 재미있다.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이 바로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크리스텐슨 교수다. 그는 첫 저서 '성공기업의 딜레마'에서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이라는 개념으로 산업 내 후발주자가 선도 기업을 추월하는 현상을 분석했고 이후 '성장과 혁신'이라는 책에서 이 개념을 더욱 정교하게 발전시켰다. 이번 책 '미래기업의 조건'(클레이튼 크리스텐슨 외 지음,이진원 옮김,비즈니스북스)에서는 각 분야 산업의 생생한 사례를 통해 이 개념으로 주요 산업의 미래를 예측하는 법을 알려주고 있다. 파괴적 혁신은 존속적 혁신(sustaining innovation)과 대비되는 개념이다. 시장 대다수의 고객이 기대하는 성능을 충족시키기 위해 제품을 개선해 나가는 것이 존속적 혁신이라면,싼 가격이나 편리함 등 틈새시장의 고객 니즈에 대응하면서 기술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파괴적 혁신이다. 선도 기업이 파괴적 혁신의 암초에 걸리면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신생 기업에 역전될 수밖에 없다. 슈퍼컴퓨터를 무너뜨린 PC,제록스의 고기능 복사기에 대응한 캐논의 소형 복사기,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약진하고 있는 한국 자동차,대형 백화점을 위기에 빠뜨리고 있는 할인점이나 홈쇼핑 등이 파괴적 혁신의 사례다.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은 매우 장기적이고 큰 틀의 이야기다. 통신 산업에서 100년에 걸쳐 일어났던 사건들,반도체 산업의 오랜 역사,할인 항공사가 지금의 위치에 오르게 된 이야기 등 매우 긴 환경 변화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래서 파괴적 혁신의 중요성을 알면서도 단기 성과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우리 기업의 경영진들에게는 먼 이야기처럼 들린다. 하지만 파괴적 혁신은 우리 주변에서 늘 일어나고 있다. 이제는 세계 일류기업이 된 일본 기업들도 모두 파괴적 혁신으로 유럽 및 미국 선도기업 시장을 야금야금 잠식해 간 것이다. 현대자동차가 미국의 소비자연맹이 발간하는 '컨슈머 리포트'의 추천 차량 목록에 오를 정도로 인정받게 된 것도 파괴적 혁신의 길을 갔기 때문이다. 더욱이 최근에는 기술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디지털 컨버전스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언제 휴대전화기가 TV와 컴퓨터를 대체할지 모른다. 파괴적 혁신과 관련한 이야기가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때이다. 바야흐로 파괴적 혁신을 아는 자가 미래를 지배하는 시대가 개막되고 있는 것이다. 464쪽,1만6500원. 이병주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