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밤샘의 기쁨‥심재명 < MK픽처스 사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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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명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스스로 책을 읽거나,공부를 하거나,일기를 쓰거나 하면서 밤을 꼬박 새운 학창 시절의 기억을 누구나 지니고 있을 것이다.
밤이 점점 깊어가고 사위가 쥐죽은 듯 조용해지면 전기 스탠드를 밝힌 책상에 앉아 있는 나 혼자만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듯 자신에게 집중할 때의 기쁨은 특별한 것이다.
어느덧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보면 하늘이 휘부옇게 밝아오던 순간.밤을 꼬박 새우면서 아침이 오는 순간을 고스란히 목도할 때 몸은 피곤하지만 정신은 오히려 맑아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육체의 고단이 선물하는 또렷한 희열이라고나 할까.
영화를 만드는 일은 '밥 먹듯 밤을 새우는 일'이라고 보면 맞다.
한편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 치러지는 촬영작업은 수십 번의 밤샘작업이 있어야 가능하다.
며칠 전 늦은 밤 어느 영화 촬영 현장에 들렀다.
불꺼진 거리에서 촬영 현장을 찾아내는 일이란 쉽다.
왜냐하면 어둠 속에서 유독 불 밝힌 장소만 찾아내면 되므로.깊은 산속 오롯이 혼자 불밝힌 오두막을 찾아내는 일처럼 말이다.
정작 그 촬영 장소에서는 수십명의 사람이 땀을 흘리고 잰 걸음으로 촬영 기자재를 옮기고 설치하고,배우의 분장을 고치고 옷매무시를 가다듬어 주느라 열심이다.
모두들 감독의 얼굴을 주의 깊게 바라보며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몸은 피로로 지쳐가지만 눈빛은 점점 형형해지는 시간,그러다 주위가 서서히 밝아오면 영화의 밤 장면 촬영은 끝을 내야 한다.
준비한 분량을 대부분 해 뜨기 전에 마쳐야 하는 부담감 때문에 새벽녘에는 오히려 부산을 떨어야 한다.
이윽고 하늘의 검은 빛이 벗겨지면서 회색빛 푸른 기운이 감돌면 풀어놓았던 엄청난 양의 촬영용 기자재 따위의 짐을 싸고,자리를 정돈하고,해장국 한 그릇을 위해 삼삼오오 인근 식당으로 몰려간다.
그러고는 다음 촬영을 약속하며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다.
밤을 밝히면서 일하는 노동의 신성함,그리고 그 열정을 경험하고 알고 있는 사람들은 행복해 보인다.
그 노동의 현실적 대가도 달콤하다면 더 기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