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설의 '경영 업그레이드'] CEO는 마음 도둑

삼성경제연구소가 운영하는 CEO 경영교육 인터넷사이트 세리CEO(www.sericeo.org)가 출범 3년여 만에 연구소의 수익센터로 뿌리를 내렸다. 100만원씩 연회비를 내는 회원수가 4500명을 넘었고 연매출도 상당하다고 한다. 세리CEO의 기본적인 교육 모델은 5분짜리 온라인 특강이다. 각계각층의 전문가들이 나와 파워포인트 화면을 곁들여 강연하는 장면이 동영상으로 중계된다. 5분이라면 전화가 오거나 부하 직원이 결재받으러 와도 "잠깐만..."이 가능한 시간이다. 보통의 다른 강좌처럼 30분∼1시간을 넘어가면 그럴 수 없다. 중단하고 나중에 봐야지 했다가 결국 시간이 지나면 포기하고 만다. 세리CEO가 경영자 인터넷교육에 새 장을 연 건 바로 다름아닌 이 5분이다. 5분 정도야 언제든 시간을 낼 수 있다는 CEO들의 '마음'을 잡은 것이다. 이뿐만 아니다. 최신 경영지식을 수시로 보충해야 한다는 조바심, 그것도 '남들이 잘 모르게' 하고 싶어하는 CEO들의 또 다른 속마음까지 훔쳤다. 사람들이 마음 속으로 소중하게 여기는 것, 이것이 바로 가치(value)다. 세리CEO가 최근 내건 슬로건도 '당신은 마음 도둑'이다. 사실 사람들의 마음 속을 알아차리기는 참 어렵다. 가치는 만드는 사람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전세계에서 9억달러의 돈을 번 초대형 히트 영화 '반지의 제왕' 원작자인 톨킨은 40여년 전 "이런 것이 무슨 영화가 되겠느냐"며 판권을 1만파운드라는 헐값에 팔았을 정도다. 고객이 원하는 가치를 찾아내기 위해서는 평소 고객을 알기 위한 노력을 많이 기울여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이 마음 속까지 꿰뚫어 볼 수 있는 주의깊은 관찰이다. 펩시가 묶음으로 들고 갈 수 있는 콜라 패키지 포장법을 개발한 것은 할인점에서 세일할 때 사람들이 '들고 갈 수 있는 양만큼' 구입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눈으로 보아낸 덕택이다. 최근 화제를 모으고 있는 로또라이터도 세밀한 관찰의 결과다. 이미 모방 제품들이 쏟아져 나와 최초의 개발자를 알기 어렵게 됐지만 그 사람도 사람들의 마음 속을 꿰뚫은 혁신가다. 로또 판매상들에 따르면 사람들은 번호를 미리 정해올 때와 달리 "자동으로 해주세요"라며 돈을 내밀 때는 주인과 눈이 마주치는 것을 싫어한다고 한다. 그 마음 속에는 "번호도 하나 제대로 못 정하는 작자가 무슨 행운을…" 하는 부끄러움이 있는지도 모른다. 로또라이터는 바로 이 마음을 잡았다. 그 자리에서 흔들기만 하면 여섯 개의 구슬이 번호판으로 들어가 자동 번호를 만들어낼 수 있다. 맨 처음 나온 '오리지널' 로또라이터에는 그래서인지 이런 작은 문구가 적혀 있다. '흔들면 얻을 것이라.' 성신여대의 신입생 모집 광고도 마찬가지다. 다른 대학들이 졸업생 취업률 등을 자랑할 때 이 학교는 여학생이 청바지 입고 헌팅캡 쓰고 캠퍼스 잔디밭에 앉아 시집을 읽는 장면 옆에 '성신여대의 매력'이라는 카피만 써놓았다. 고3 여학생들은 취업률에 마음이 갈 것인가, 아니면 이런 매력에 끌릴 것인가. 새로운 비즈니스는 사실 그 구체적인 방안은 실무자들이 다듬어도 방향은 경영자의 몫이다. 여러가지 고려를 해야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중들의 마음 속, 즉 시장이 원하는 가치를 찾는 일이다. 그것이 요즘의 화두인 블루오션 전략,가치 혁신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한경 가치혁신연구소장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