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 반도체증산 놓고 신경전


미국과 중국이 반도체 증산을 놓고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중국 최대 반도체업체인 SMIC가 베이징에 12인치(300mm) 웨이퍼용 반도체공장을 새로 지으려 하자 세계 2위 D램 생산업체인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가 제동을 걸고 나섰다.


비즈니스위크는 SMIC가 베이징 공장에서 사용할 12억달러 상당의 반도체 생산장비를 미국 어플라이드머티리얼스 등으로부터 수입하기 위해 미국 수출입은행에 지급보증을 요청했으나 마이크론의 방해로 사실상 실패했다고 23일 보도했다. 이에 따라 SMIC는 서둘러 중국 은행을 상대로 자금조달 문제를 협의하고 있으나 당초 계획에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이 잡지는 전했다.
SMIC는 다른 업체들이 주문하는 비메모리 반도체 수탁생산을 통해 전체 매출의 80% 정도를 벌어들이는 세계 3위의 파운드리 업체다.


◆마이크론의 반대 로비


마이크론은 D램 경기가 여전히 부진한 가운데 SMIC가 생산설비를 늘리면 가뜩이나 약세인 D램 가격에 새로운 불안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SMIC가가 베이징공장에서 비메모리는 물론 D램도 얼마든지 생산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마이크론은 SMIC의 새 공장이 세계적 공급과잉을 심화시켜 D램 가격 하락을 부추길 것이란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지급보증을 해줘선 안 된다고 미 수출입은행의 필립 메릴 회장을 설득했다.


이 같은 소식을 접한 SMIC는 리처드 창 회장 등 경영진이 마이크론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수차례 미 워싱턴으로 달려가 진화에 나섰다.


이들은 수출입은행측에 새 공장에선 비메모리만을 생산하고 회사 전체 D램 생산량이 세계시장 수요의 1%를 넘지 않도록 조절하겠다고 당초 계획을 수정 제시했으며,12억달러를 요청했던 지급보증도 7억7000만달러로 낮췄지만 무위에 그쳤다.
마이크론이 본사가 있는 아이다호주 출신 의원들까지 동원,"미국 납세자들의 돈으로 중국 기업의 공장증설을 지원할 수 없다"는 논리를 앞세워 압력을 넣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공방전 끝에 메릴 회장은 수출입은행 이사회가 이 문제에 대해 투표하는 것조차 반대하는 등 마이크론의 손을 들어줘 SMIC는 빈손으로 중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중화자본으로 눈 돌리는 SMIC
상황이 이렇게 되자 SMIC는 중화자본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이와 관련,홍콩 경제지 더스탠더드는 SMIC가 중국 은행들로부터 6억달러 규모의 신디케이트론을 받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 정보기술(IT) 전문매체 EE타임스는 "SMIC가 중국 정부의 도움으로 4억~6억달러의 자금 조달을 마무리하기 직전에 있다"고 전했다.


SMIC가 베이징공장에 이처럼 정성을 쏟는 것은 자사는 물론 중국을 통틀어 첫번째로 지어지는 12인치 웨이퍼 공장이기 때문이다. 12인치 웨이퍼 공장은 8인치 공장보다 생산량이 2배 이상 많아 원가경쟁력도 그만큼 높아지게 된다.


◆우려되는 SMIC의 증설 영향


비즈니스위크는 SMIC가 미국이 아닌 다른 곳에서 자금을 조달하면 마이크론은 더 큰 희생을 치르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SMIC가 미국 은행의 지급보증을 얻지 못한 만큼 D램 생산량을 조절할 이유도 없어진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EE타임스는 "SMIC가 D램 생산을 전체 매출의 20~25%로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계속 밝히고 있지만 12인치 공장이 본격 가동되면 매출 비중이 35% 이상으로 높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EE타임스는 삼성전자가 세계 D램시장 규모가 올해 4% 줄어드는 데 이어 2006년에는 12% 격감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며 SMIC의 증산에 따른 공급과잉 가능성에 우려를 표명했다.


장경영 기자 long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