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파동' 땅값이 더 문제다] (1) 파동때마다 등장하는 투기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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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쏟아내는 개발 청사진에 편승해 불로소득을 얻으려는 투기세력들의 움직임도 지난 70~80년대 말의 1.2차 땅값 파동 때와 흡사한 양상이다.
1차 땅값 파동은 경부고속도로가 착공된 지난 68년부터 시작됐다.
당시 서울 말죽거리 (양재동)를 중심으로 불어닥친 땅투기 바람은 역삼.논현.서초동 등 이른바 영동지구(영등포 동쪽지역이라는 뜻) 개발과정에서 극성을 부렸다.
이어 잠실개발,제3한강대교 개통 등과 맞물려 더욱 기승을 부리면서 이른바 '복부인'이 등장했다.
복부인은 70년대 중반 서울 용산구 이촌동, 강남 영동.잠실 등의 아파트와 땅 투기에 열을 올리며 투기세력의 대명사로 자리잡게 됐고 지금은 국어사전에까지 당당히 올라 있는 일반명사가 됐다.
당시 언론은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토지투기'라는 표현으로 1차 땅값 파동을 기록했다.
88서울올림픽을 전후로 국제수지 흑자 등에 힘입어 시중자금이 넘쳐나던 80년대 말 복부인들이 다시 부동산시장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2차 땅값 파동이 일어났다.
당시 땅투기꾼들은 북방정책과 서해안개발 등 각종 개발사업에 편승해 동.서.남해안 일대와 심지어 섬지역의 논.밭.임야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사들인 뒤 단기간에 미등기 전매하는 수법으로 막대한 차익을 챙겼다.
이때 복부인을 상징하는 '빨간 바지'라는 말이 생겨나 유행처럼 번졌다.
당시 땅투기로 이름을 날렸던 고위층 부인들이 즐겨 입고 다니던 바지색깔에서 비롯된 말이다.
2002년 이후에는 '기획부동산'들이 대거 등장,소액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땅 투기 바람을 일으켰다.
토지시장을 타깃으로 한 이들은 현재 텔레마케팅은 물론 다단계 판매기법인 '피라미드'방식까지 도입하면서 개발바람을 타고 전국의 토지시장에서 '치고 빠지기식' 투기를 일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