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씨 귀국 임박] "대우세계경영 사기취급은 억울"..석변호사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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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석진강 변호사를 다시 만난 것은 2001년10월 이후 3년8개월만이었다.
당시 석 변호사는 ‘대우패망비사’를 연재한 한국경제신문 취재팀에게 김우중 전 대우 회장의 편지를 전달하면서 김 회장의 이런저런 근황을 상세히 들려주었다.
김 회장의 최측근이랄 수 있는 그를 이번에는 하노이에서 만날 수 있었다.
무턱대고 김 회장의 행방을 찾아 하노이를 뒤지던 기자에게 2일 저녁 석 변호사가 하노이 대우호텔에 묵고 있다는 정보가 흘러들어왔다.
석 변호사의 방을 찾았을 때 그는 귀국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기자를 맞딱뜨린 그는 “이곳까지 찾아올줄은 몰랐다”며 무척 당황해하는 기색이었지만 한번 말문이 터지자 기자의 질문에 거침없이 답변을 이어갔다.
그는 자신이 하노이를 찾은 이유를 “지난 몇년간 대우사태 관련 소송에 지칠대로 지친 심신을 달래기 위해 안사람과 함께 여행길에 올랐다”며 “김 회장이 여기에 있는 것으로 오해하지 마라”고 미리 선을 그었다.
다음은 석 변호사와의 일문일답.
-김 회장이 정말 귀국하나.
"귀국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시기와 방법 등은 법률자문을 맡고 있는 김&장법률사무소가 결정할 것이다. 여러가지 복잡한 사정 때문에 귀국 여부를 100% 단정할 수는 없는 상황이지만 본인이 귀국하겠다는 결심을 했다."
-김 회장이 귀국을 결심한 이유는.
"단순하다. 당초부터 김 회장의 원칙은 대우사태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나오면 유.리에 관계없이 귀국한다는 것이었다. 지난 4월 대법원 확정판결이 내려지면서 더 이상 귀국을 미룰 수 있는 명분이 사라졌다."
-왜 대법원 판결이 기준선이 됐나.
"대우사태에 대한 법원의 최종 판단이기 때문이다. 물론 김 회장이 감옥 가기 싫어서 대법원 판결을 기다린 것은 아니다. 아랫사람들이 함께 연루된 재판이 끝나기 전에 자신이 귀국할 경우 나쁜 영향을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김 회장이나 석 변호사는 실제 대법원의 판결에 상당히 큰 기대를 걸었던 것으로 보인다.
과거 김대중 정부시절 그룹이 해체되고 일부 경제관료들에 의해 일방적으로 매도당했던 피해의식이 강했기 때문에 사법적 판단만은 다른 형태로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대법원 판결이 기대에 훨씬 못 미쳤을 텐데.
"그렇다. 한마디로 최악의 판결이다. 나 자신도 무척 허탈하고 울화가 치밀 정도였다. 하지만 김 회장은 이제 자신이 귀국해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어떤 결과라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
-김 회장이 귀국하게 되면 재판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다고 보나.
"김 회장은 지금 기소중지된 상태다. 귀국하면 1심 재판부터 받아야 한다. 하지만 대우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난 상황이기 때문에 대세에는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다. 하급심이 어떻게 상급심의 판결을 거스르나. 검찰의 기소 내용 역시 대법원의 확정판결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법원 판결에 대한 불만을 구체적으로 말해줄 수 있나.
"김 회장은 당초 닛쇼이와이 신용장 사기대출사건이나 재산 해외 도피 같은 문제는 무죄 판결을 받을 줄 알았다. 기대도 컸다. 사기를 쳤다고 하지만 대출받은 돈을 떼먹지 않았고 재산을 해외에 빼돌린 사실도 없었기 때문이다. 검찰측도 내심 이 부분은 무죄 판결이 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예상하던 사안이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대법원은 검찰의 기소 내용을 거의 100% 인정했다. 닛쇼이와이 사건은 미국 대법원에서도 무죄 판결을 받은 사안인데 판결문에는 그런 정황이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재산 해외 도피 건도 마찬가지다. 해외법인 채무를 갚기 위해 본사 자금을 갖고 나간 것인데 (분식회계와 외환관리법 위반 등은 인정하지만) 재산 해외 도피로 몰아붙였다. 이는 '도둑질한 물건이 없는데도 도둑질을 했다'고 판결한 것과 마찬가지다. 대법관들이 왜 이런 판결을 했는지 정말 이해하지 못하겠다. 법조인의 한 사람으로서 나중에 법원 판례를 비판하는 저술을 해보겠다는 생각까지 들게 할 정도다. 하지만 막상 김 회장이 귀국하면 또 재판을 받아야 하는데 (판례 비판으로 인해) 혹시 밉보여 5년 받을 걸 10년 받으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을 하고 있다."
-김 회장이 귀국하게 되면 '구속 수감 후 병보석' 또는 '일정 기간 구속 수감 후 특별사면' 등의 시나리오가 준비될 것이라는 소문이 있는데.
"사법당국이 보석을 허가해 주겠나. 대법원 판결로 보면 중죄인이나 마찬가지인데…. 사면도 부질없는 얘기다. 상당히 복잡하고 미묘한 사안들이 고려돼야 할 일인데 함부로 예측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김 회장 자신이 큰 기대를 갖고 있지 않다. 이미 명예는 땅에 떨어졌고 그룹도 풍비박산이 났다. 일신의 안녕을 도모하는 데 별로 집착하지 않는다."
-김 회장의 공과에 대한 논란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이는데.
"김 회장의 가장 큰 공로는 한국 기업들이 세계시장에서 어떻게 살아 남아야 하느냐를 보여 주고 실천한 것이다. 요즘 삼성이나 LG가 글로벌 경영을 내세우고 있지만 이는 대우가 20년 전에 이미 시작했던 것이다. 김 회장처럼 하지 않으면 한국 경제는 앞으로 발전할 수 없다. 김 회장은 요즘도 이런 얘기를 한다. '중국은 거대시장을 갖고 있고 일본은 첨단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이 그 사이에 끼여 먹고 살려면 무조건 신흥시장을 개척해 우리만의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라고. 김 회장 스스로 후회하듯이 대우가 과거에 용인되지 않은 방식으로 구조조정을 시도하고 무리한 해외 진출을 추진한 것은 사실이지만 무에서 유를 창조한 기업가로서 김 회장의 정신은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노이(베트남)=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