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경쟁시장 최대의 적(敵)은?

김인호 최근 KT를 비롯한 통신사업자들 간의 다양한 공동행위가 공정거래위원회의 강도 높은 조사와 심판을 받았다. 그 중에서도 KT와 하나로텔레콤 간의 시내전화 요금 담합은 사상 유례가 없는 높은 수준의 과징금 부과 처분을 받아 사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거의 모든 나라의 경쟁법은 사업자들 간의 공동행위를 대표적인 경쟁제한 행위로 규정짓고 강한 처벌 대상으로 하고 있다. 금번의 엄격한 심판결과도 통신사업 분야의 공동행위 소지를 없애려는 공정위의 강력한 의지 표현으로 이해된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경우 통신시장의 형성과 발전과정,그리고 통신사업자와 정부와의 관계를 고려할 때 이 시장이나 사업자들에게 공정거래법상 공동행위에 대한 일반원리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적절하냐는 데 있다. 우선 통신사업은 오랫동안 공기업 형태의 독점 사업으로 운영돼 오다가 민영화와 개방을 추진하면서 경쟁을 비롯한 시장요소를 도입하고 있으나 아직도 과도기에 있는 사업이다. 정보통신부는 다양하고 강력한 법체계를 가지고,때로는 경쟁촉진의 명분까지 동원하면서 이 분야의 사업을 구석구석 규제하고 지도하고 있다. 전기통신사업법을 근거로 인위적으로라도 경쟁을 촉진하기 위해 외견상 일반적인 경쟁원리와는 전적으로 상반되는 것처럼 보이는 정책 수단들,예컨대 후발 사업자가 일정한 수준의 경쟁력을 갖추기까지 선ㆍ후발자를 구분해 지원하고 규제하는 소위 '비대칭규제'까지도 서슴지 않는다. 금번 시내 전화요금과 관련해 KT와 하나로텔레콤 간 담합으로 판정된 사안의 배후에는 후발 시내전화사업자인 하나로텔레콤의 시장경쟁력을 키워주기 위해 정통부의 '비대칭규제'가 행정지도의 형태로 있었던 것은 충분히 짐작되고도 남는다. 금번 공정위의 심판결과에 대해 당해 사업자들이 이의를 제기하는 근거다. 이런 배경을 감안할 때 합리적인 통신 정책의 입안과 집행을 위해선 일반적인 경쟁법 원리와 통신사업에 적용될 특유의 경쟁촉진 수단과의 조화를 위해 공정위와 정통부 간에 적절한 정책조정 노력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거쳐 마련된 제도나 정책수단들은 투명하게 관련 사업자들에게 제시돼야 한다. 그래야 사업자들은 정부의 정책방향을 이해하고 충분한 예측가능성을 가지고 사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정통부가 이런 노력을 먼저 할 것을 기대하는 것이 비현실적이라면 공정위가 주도적으로 해야 할 일이다. 공정거래법은 공정위의 이런 기능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이런 노력이나 과정이 전연 없는 상태에서 공정위가 사업자들에게만 책임을 묻는 것이 적절한지 깊이 생각해야 할 일이다. 정통부뿐 아니라 대부분 정부 부처들의 경쟁시장에 대한 이해는 매우 낮다. 그들은 관장하는 사업과 관련하여 때로는 사업자에게 직접적으로, 때로는 영향력 아래 있는 각종 사업자 단체를 통해 다양한 형태의 간여와 규제를 하고 있다. 본질적이고 구조적인 경쟁제한적 조치가 정부 각 부처에 의해 광범위하게 행해지고 있고 사실상 정부 각 부처가 공동행위의 온상이 돼 있는 것이다. 공정거래법 63조는 정부 각 부처가 경쟁제한적 법령을 제정하거나,사업자에 대해 경쟁제한적 처분을 하고자 할 때에는 미리 공정위와 협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정부 스스로에 의해 이뤄지는 무수한 법적ㆍ제도적ㆍ정책적 차원의 경쟁제한 행위를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도록 공정위에 강력한 기능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경쟁시장의 조성이란 측면에서 본다면 공정거래법 중 가장 중요한 규정이라고 생각한다. 공정위가 이 규정의 취지대로 기능하려면 거의 전 정부부처를 상대로 전방위적인 싸움을 벌여야 할테니 단독으로 감당하기엔 너무 무거운 짐일 것이다. 그러나 이 기능을 포기하거나 소극적으로 하면서 사업자들의 경쟁제한 행위에만 주목해서는 경쟁정책의 효과는 한계를 면치 못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경쟁시장 최대의 적(敵)은 정부 자체다. ihkim@kosb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