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계 편집장 출신 CEO시대 열렸다


국내 최대 단행본 출판그룹인 민음사(회장 박맹호)가 편집자 책임경영제를 전면 도입해 눈길을 끌고 있다.


내년에 창립 40주년을 맞는 민음사는 경영 전문성을 높이고 편집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지난 8일 박상순 민음사 편집이사(43)를 민음사 대표이사 편집인,자회사인 황금가지의 장은수 편집이사(38)를 황금가지 대표이사 편집인으로 각각 발령했다. 또 김기중 전 김영사 주간(39)을 신설 자회사 황금나침반 대표이사 편집인으로 영입했다.
올해 초 창립자인 박맹호 사장 체제를 마무리하고 장남 박근섭 사장(41) 체제로 전환한 지 6개월 만에 또 한번의 혁신 인사를 단행한 것이다. 박근섭 사장은 민음사 대표이사 발행인만 맡는다.


이번에 사령탑을 맡게 된 세 사람은 출판계 밑바닥에서 시작해 13~15년 만에 편집 분야 최고 책임자 자리에 오른 베테랑 편집자들.


박상순 대표는 서울대 미대 출신으로 민음사 미술부에 디자이너로 입사해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 그는 시인이자 화가이기도 하다.
장은수 대표는 서울대 국문학과 졸업 후 민음사 편집부에서 출판계 생활을 시작,지금까지 한길을 가고 있다. 문학평론가인 그는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시리즈 등 히트작을 잇달아 냈다.


김기중 대표는 한국외대 철학과 출신으로 김영사 시절까지 굵직한 기획들을 연속 선보인 베스트셀러 제조기.


이로써 민음사는 박맹호 회장 아래 박근섭 대표이사 발행인의 재무·회계경영,전문가 3명의 책임편집경영,기존 사이언스북스(대표 박상준)와 비룡소(대표 박상희) 등 핵심 역량 위주의 5개 자회사 시스템으로 거듭나게 됐다.
민음사는 이를 계기로 자회사 황금나침반 안에 인문·비소설 분야를 다룰 별도 브랜드 '책읽는 소리'를 신설하는 등 다양한 영역을 개척할 계획이다. 신규 브랜드들을 통해 양서를 폭넓게 출간하면서 종합출판 그룹으로서의 위상을 굳건히 하겠다는 것. 이 과정에서 '편집자 사장'이 해당 분야의 전권을 행사하며 역량을 강화하고 출판그룹 전체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한다는 방침이다.


국내 출판계에서 전문 편집인이 대표이사 자리에 오른 경우는 김영사 설립자인 김정섭씨가 1989년 당시 편집장이던 박은주 현 사장에게 대표이사 자리를 물려준 사례와 현암사의 형난옥 대표이사 전무가 편집자에서 경영자로 발탁된 것 등 손꼽을 정도다.


그런 점에서 민음사의 편집자 책임경영 체제 도입은 차세대 경쟁력 강화의 전략 모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기존의 가족 기업 이미지에서 벗어나 전문 경영 시스템으로 제2의 도약에 나선 것이다.
그동안 전문 편집자가 어느 정도 성장하면 '더 이상 올라갈 데가 없어서' 회사를 그만두고 독립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 같은 한계를 넘어 조직과 개인이 함께 발전하는 '윈·윈전략'으로 출판 역사를 새로 쓰자는 게 '장년'에 접어든 민음사의 대변신 이유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