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남편의 거짓말

알고도 속고 모르고도 속는다고 체념하면서도,아내들은 이따금 '내 남편이 행여 나를 속이지는 않는가'라는 생각에 빠진다고 한다. 신뢰를 저버린 남편의 거짓말이 탄로나 결혼이 파탄에 이르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부부 간의 거짓말은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격이라 그 배신감이 더욱 크게 마련이어서 쉽사리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곤 한다. 그 단적인 예가 얼마 전 인기리에 방영됐던 한 방송국의 미니시리즈 '아줌마'다. 남편은 변명과 허풍을 일삼고 마침내는 외도도 마다하지 않았다. 아내의 고통은 날로 깊어만 갔다. "내 남편은 입만 열면 진실이 없는 거짓투성이"란 드라마 속 아내의 하소연에 많은 아내들이 동감을 표하면서 열렬한 호응을 보낸 것은 간단히 보아넘길 일이 아니었다. 살다 보면 본의 아니게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는데 그렇다고 모조리 나쁜 것만은 아니다. 기분 좋은 거짓말은 부부 사이의 윤활유가 될 뿐더러 가족의 화목에도 크게 이바지한다. 아이들 앞에서 "엄마가 처녀 시절엔 얼마나 예뻤는지 아니?" 한다든지 "아직도 당신은 가장 멋져" 하는 등등의 말은 아내의 기(氣)를 살리는 데 그만일 것이다. 아내의 걱정을 덜기 위한 새하얀 거짓말이라면 백번이라도 권장할 일이다. 대부분의 남편들은 누구나 몇 번의 거짓말 경험을 갖고 있다. 그것이 선의든 악의든 관계없이.인터넷 쇼핑몰 인터파크가 지난달 기혼 남녀 88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남편들이 가장 흔히 하는 거짓말은 "금연하고 운동해서 살 뺄 거야" "보너스 타면 당신 다 줄게" "오늘 회사 동료 부친상이라 상가에 가야 해"로 나타났다. 초상집이 아닌 술집에서 밤늦게 시간을 보내고,회사일을 핑계로 가족과의 약속을 저버린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아내들은 "귀신은 속여도 나는 못 속인다"며 진실을 캐려 하지만 말처럼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그래서 아내들은 절반은 속고 절반은 속아 준다며 단념하는 것 같다. 아내를 속인다는 죄책감이 클수록 남편의 거짓말은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을 터이니,아예 처음부터 털어놓는 것 외에 다른 뾰족한 방법이 있을까 싶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