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파동' 땅값이 더 문제다] (7ㆍ끝) 해법은 … 선진국서 배운다

'땅투기는 정부의 개발정책을 먹고 산다'는 말이 있다.정부의 개발계획이 해당 지역 땅값을 끌어올리고 결국 투기세력을 불러모은다는 데서 비롯한 유행어다. 이 말을 뒤집어 보면 개발정책을 내놓기 전에 땅값과 투기를 잡기 위한 안전장치가 선행돼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정치논리가 개입된 개발구호에 앞서 개발 전후의 땅값안정 대책까지 함께 담긴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런 점에서 40여년 전 프랑스 정부가 추진했던 '랑독ㆍ루시옹 개발계획'을 본보기로 삼을 만하다.이른바 '미션 임파서블(Mission impossible)'로 불린 초대형 프로젝트다. 당시 엄청난 관광수지 적자에 시달리던 프랑스 정부는 1959년 해안선 길이 220km,폭 20km에 달하는 지중해 연안의 랑독ㆍ루시옹지역 일대를 복합레저단지로 개발하려는 엄청난 구상을 비밀리에 추진했다. 최근 실체가 드러난 우리나라의 'S-프로젝트'(서남해안 개발)와 비슷한 구상이다. 4년간 베일에 가려있던 이 계획이 프랑스 국민들에게 알려진 것은 1963년이었다. 사업추진 결과는 물론 대성공이었다. 당시 낙후된 농업(포도생산)지역이 지금은 유럽 각지에서 연간 10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을 정도로 프랑스를 대표하는 해양리조트로 탈바꿈했다. 뿐만 아니라 5만명의 일자리가 생겼고 지역 내 총생산(GRDP)의 12%를 차지할 정도로 대표 산업으로 자리를 굳혔다. 놀라운 사실은 이 같은 초대형 프로젝트를 진행면서도 땅값 불안은 없었다는 점이다. 개발구상만 나와도 땅값이 몇 배씩 뛰는 우리로서는 불가사의한 일처럼 느껴지지만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프랑스 정부는 개발구상 단계부터 땅값 안정을 최우선 목표로 정하고 2단계 토지매입 전략을 수립했다. 1963년 특별위원회 설립 전까지는 정부가 선매권(先買權)을 활용해 극비리에 360만평을 사들였다. 개발계획은 위원회 설립 때까지 2년 이상 일절 누설되지 않았다. 실제로 땅매입 실무자들은 누구도 '리조트'라는 말과 '매입주체가 정부'라는 사실을 입밖에 내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의심받게 되면 지역 전체의 땅값 광란을 초래할 우려가 컸기 때문이다. 철저한 사전준비와 철통보완이 완벽했던 셈이다. 위원회 설립 후엔 '토지수요 및 지가동결법'을 제정해 땅을 매입했다. 땅 투기를 막기 위해 주변 75억평을 '장기개발예정지구(ZAD)'로 지정해 토지거래를 제한하고,이 중 1500만평을 강제수용 없이 정부가 실거래가로 매입했다. 땅값이 뛰지 않았기 때문에 정부의 시가(時價) 매입이 가능했다. 무려 180km에 이르는 해안도로와 신도시,4개의 공항,17개의 항만,3개의 TGV(고속철도) 정차역,고속도로 등이 건설됐는 데도 15년 넘게 땅값이 안정된 핵심 비결이다. 당시 총책임자였던 피에르 라시느씨는 이 프로젝트의 개발과정을 소개한 저서에서 "대규모 개발프로젝트는 사전 토지규제가 절대 필요하고,다음으로는 1호 건물이 완공되기 전에 모든 기반시설의 설치ㆍ정비가 끝나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프랑스 정부가 해당 지자체와 현지주민을 설득한 과정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중앙정부가 단독 결정한 프로젝트였던 만큼 반(反)정부 성향이 강한 지방정부 및 의회,주민들의 이해를 구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프로젝트팀'은 1963년부터 여ㆍ야의 지자체 의원과 지방정부를 일일이 찾아가 정부의 구상을 분명하고 솔직하게 밝히며 이해를 구했다. 협조 약속을 받아낸 뒤에는 지방정부를 사업에 직접 참여시켰다. 개발구상과 총괄기능은 중앙정부,집행기능은 지방정부가 수행하도록 권한을 대폭 이양한 것이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구축한 신뢰와 협조 관계, 일관성을 바탕으로 한 '팀플레이'가 또다른 성공비결인 셈이다. 대구ㆍ경북연구원의 송은정 책임연구원(문화관광연구팀장)은 "프랑스 정부와 지자체,민간기업의 합작품이지만 땅값안정 대책 등을 마련한 중앙정부의 역할이 컸다"며 "20년에 걸쳐 완성된 프로젝트가 과거 2000~3000년간 랑독ㆍ루시옹 지역이 겪었던 것보다 더 큰 변화를 가져다 줬다"고 평가했다. 강황식 기자 his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