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현대重 노조의 혁신

"정치적이고 투쟁 지향적인 노조에는 더 이상 미래가 없습니다." 현대중공업 탁학수 노조위원장은 15일 선진 복지 노조를 지향하는 새 노사관계 강령과 이념 선포식을 갖고 투쟁 일변도의 기존 노동운동과의 결별을 선언했다. △참여와 협력으로 노사 공존공영 △기업경쟁력 강화로 조합원 삶의 질 향상 등 6개항으로 이뤄진 강령 선포식에는 현대중공업의 민계식 부회장과 유관홍 사장,박맹우 울산시장,박종철 부산지방노동청청장 등 노·사·정 관계자들이 대거 참석해 박수갈채를 보냈다. 한때 과격투쟁의 대명사였던 현대중 노조가 지난해 민주노총을 자의반 타의반 탈퇴한 데 이어 강령까지 제정하며 상생의 노사관계를 구축할 것을 다짐한 것은 노동운동의 지형이 급격히 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이번 선언은 최근 취업비리 등 모럴해저드에 빠져있는 노동계에 자성과 변화를 촉구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노조의 상생모델은 도요타자동차 등 선진 노사 기업을 직접 방문한 뒤 수많은 토론과 논의과정을 거쳐 만든 것이다. 그만큼 상생의 노사관계를 정착시키려는 노조의 노력과 기대도 남다르다. 탁 위원장은 "우리가 오늘 선진 노사관계를 선언하기까지는 무려 10여년의 세월을 허비해야 했다"며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는 현 노동운동에 대해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1990년대 노동운동을 주도했던 현대중 노조가 투쟁 대신 참여와 협력의 신노사문화에 나서겠다고 선언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급변하는 경영환경 때문일 것이다. 옛날처럼 투쟁만을 벌이다간 노사 모두가 공멸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한 것이다. 노조도 혁신적 사고를 갖고 생산성 향상에 앞장서야 분배도 늘어나고 고용도 안정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알고 있다. 그럼에도 노조의 한 쪽에선 이번 선포식을 놓고 자주성을 포기한 일본 도요타의 모델을 본뜬 것에 불과하다며 대놓고 비판을 하고 있다. 이들은 참여와 협력의 생산적 노사관계를 노동운동의 에너지를 파괴하는 독약 정도로 인식하는 것 같다. 울산=하인식 기자 ha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