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위선 버려야 집값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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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재
노무현 정부의 집값 정책은 언제나 동문서답이었다.
서민보호를 불가침의 구호로 내건 것부터 잘못이었고 특정 지역의 고가 주택을 '분노하고 증오했던' 데다 정책 효과가 복잡한 10ㆍ29대책 등을 청와대의 '빈부격차 차별 시정위원회' 같은 순정파들이 끌고갔으니 결과를 예상키 어렵지 않았다.
지금도 위선적 구호가 걸려 있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대통령의 '전면 재검토' 지시에도 별반 기대할 것이 없다.
목표와 수단을 혼동하고 있는 동안은 실패도 반복된다.
우선 시장 상황에 대한 판단부터가 잘못됐다.
'서민보호'라는 열정에 기초하다보니 처음부터 냉정성을 갖추기 어려웠다.
최근의 문제는 집값의 상대적 격차, 다시 말해 "저쪽 집값은 폭등하는데 왜 우리집은 오르지 않는가"이지 평균적으로 모든 집값이 폭등하고 있는 데서 온 것이 아니다.
서울만 해도 강북의 대부분 지역은 집값이 오르지 않아 걱정이요 그 점이 불만의 골자다.
무주택 서민의 내집 마련이 갈수록 어려워진다는 일부의 선동적 분석도 진실과는 거리가 있다.
32평 내집 마련에 몇 년이 더 걸린다는 식의 잘못된 계산에 말려들면 현실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금리가 낮기 때문에 저축을 통해 내집 마련하기가 더 어려워졌다는 것이 요점이지만 바로 그 저금리 때문에 차입을 통해 내집을 마련하는 길은 더 넓어져 있다.
집 없는 서민을 입에 달고 있는 당국자들은 지금도 '저금리'를 비용 아닌 소득으로 계산하고 있다.
또 이 거꾸로 계산을 기초로 정책을 생산하고 있다.
그러나 서민용 집값은 불행히도 벌써 상당기간 하향 안정세에 있다.
또 하나의 오류는 집값과 주거비의 착각이다.
보유세 인상이 분명 집값은 떨어뜨리겠지만 세금을 합친 평균 주거비는 보유세 인상 이전과 크게 달라질 것이 없다.
이것은 더하기 빼기의 산수일 뿐 결코 고등 수학이 아니다.
문제는 지역에 따라, 또는 물건(物件)에 따라 세금의 전가(轉嫁) 구조가 달라진다는 점이다.
우량 물건은 장래 세금의 현재가치의 승수만큼 오르는 게 당연하고 열등 물건은 그만큼 떨어진다.
이렇게 집값 차별화는 가속화되고 있다.
따라서 집값의 양극화가 걱정이라면 세부담 완화가 맞고 형평과세가 목표라면 올리는 게 맞다.
또 주거비를 잡을 것인지 집값을 때릴 것인지 확실하게 선택해야 한다.
옛말에도 물 좋고 정자 좋은 곳은 없다고 하지 않았나.
다음은 분양가와 집값을 혼동하는 오류다.
판교 분양가를 낮추라는 여론은 "나도 판교집을 한 채 사고 싶다"는 중산층들의 역(逆)선택에 불과할 가능성이 크다.
평당 분양가가 천몇백만원씩 하는 고가 주택을 토론하면서 서민주택 운운은 허위의식에 불과하다.
소셜 믹스 따위의 주장도 아름답게 포장된 독소 조항일 뿐이다.
달콤한 말 뒤에는 언제나 함정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이 정부는 언제쯤 깨닫게 될지….1만명의 투기꾼 뒤에는 10만의 예비투기꾼이 있고 그 뒤에는 100만,1000만의 투기적 에너지가 있다는 것을 부정하면 집값을 잡기란 불가능하다.
판교 대책이 어긋난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
서울 시내만 해도 판교보다 싼 곳이 도처에 널려 있는데 그 비싼 판교에 소셜 믹스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과연 무엇을 어쩌자는 것인가.
이런 착각의 기초 위에서 정책을 만들고 있으니 백전백패일 수밖에 없다.
참여정부는 허울뿐인 슬로건이나 얄팍한 역선택을 여론이라고 계속 고집할 것인지 모르겠다.
선의로 포장된 투기적 동기를 구분하지 못하면 역시 집값을 잡기 어렵다.
이런 오류들이 계속된다면 청와대가 목이 쉬도록 '전면 재검토'를 외쳐봤자 결론은 달라질 것이 없다.
오히려 더욱 강력해진 시장의 복수만 부를 뿐이다.
부동산 정책만 그런 것도 아니라는 것이 걱정이 커지는 진짜 이유다.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