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하는 삶은 아름답다] 1부 : (1) 여성속옷 디자이너 윤종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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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여자가 감히!''남자가 xx두 쪽 차고 쯧쯧''그 나이에 주책이지''그 학교 나온 주제에….' 성(性),나이,학력은 우리 사회가 스스로 쌓아 놓은 깨뜨리기 힘든 철벽이었다.
그 때문에 지난 수십 년간 우리는 이 같은 편견에 길들여져 살아왔다.
시리즈 '도전하는 삶이 아름답다'를 통해 우리 사회의 편견을 과감히 무너뜨리고 블루오션을 항해 중인 도전자들의 스토리를 들어본다.
"가슴이 예뻐야 진짜 여자이지요."
무례한 듯하지만 드러내 놓고 '여자라면 가슴을 먼저 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남자가 있다.
응큼하다.
하지만 응큼하지 않았다면 지금 그 자리에 있을 수 없다.
금남의 벽을 뚫고 당당히 우뚝 선 이 사람.
지난 1일 형형색색의 란제리와 브래지어가 널려 있는 사무실에서 만난 윤종기씨(아이엠피코리아 디자이너·33)는 여자들의 속옷을 재단하는 디자이너.대학에서 의류학을 전공한 윤씨는 원래 상품기획부에 입사했다 1년쯤 지난 2001년 디자이너를 뽑는다는 말을 듣고 '그냥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방향을 틀었다.
속 옷 디자이너인 그에게도 해결 못할 과제가 있다. 자신이 만든 속옷을 '직접 입어볼 수 없다'는 게 첫 번째 고민.'입어도 느낌을 모르기 때문에 고객의 마음을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같은 사무실 여성 디자이너들은 착용감을 알기 위해 입어 보면서 조금씩 수정을 하는데 자신만은 그렇게 못 한단다.
그래서 그는 여자친구와 누나들을 자신의 작품 테스터로 활용한다.
자신이 디자인한 티(T)팬티를 피팅 모델(fitting model)이 입어볼 때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없다는 게 남자 디자이너로서의 두번째 고민이다.
피팅 모델은 디자이너가 만든 옷을 입고 착용감 등을 점검하는 일을 한다.
"티팬티를 테스트하는 모델이 불편해할까봐 제가 피하죠.아직까지 티팬티를 입은 모델은 직접 보지 못했고요."
여성속옷을 디자인해온 지난 4년 동안 티팬티를 제외한 다른 속옷을 입은 피팅모델은 수없이 봤다.
다만 우리나라 여성의 평균치인 가슴 75B에 엉덩이 95인 모델하고만 일을 같이했다.
그에게 '이젠 무감각할 때도 되지 않았느냐'고 물어봤다.
대답 역시 솔직하다.
"처음엔 브래지어를 입은 모델만 봐도 떨렸는데 이젠 아무렇지도 않아요.
수년 동안 같은 모델하고만 일을 하다보니 진짜 '일'이 된 거죠."
남자 디자이너가 일반화하기는 했지만 아직도 여초(女超) 세상인 속옷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만의 블루오션을 찾아야 했다.
'보여주는 속옷'이 그것."여성 디자이너들은 실용성에 집착하지만 저는 '볼거리'라는 생각으로 만들어요.
" 가슴을 예쁘게 모아주고 볼륨감을 살려 겉옷의 맵시를 돋보이게 해야 한다는 게 그의 속옷 디자인 철학이다.
2001년 '호피(虎皮)브라'에 이어 2003년 '춘자브라'가 그의 히트작이다.
춘자브라는 "맨 정신으로는 입기 힘들 정도로 파격적인 컬러와 디자인 때문에 당시 젊은 여성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응큼한 이 남자 알고 보니 '모범총각'이다.
퇴근 후 월,수,금요일은 수영을,목요일에는 일본어 회화,일요일엔 자원봉사로 창경궁에서 관광안내를 한다.
6남매 중 막내인 그는 전북 김제 출신의 총각."으메,환장허겄네.땀 떴어잉(바늘땀이 잘못됐네)." 일하다 보면 본인도 모르게 나오는 고향 사투리 때문에 사무실 분위기도 한껏 부드러워진다.
"외국 잡지를 보면 레이스 한 겹으로 만든 그런 속옷 있잖아요.
하늘하늘한 소재의 홑겹 레이스 브래지어를 만들어 보고 싶어요.
그게 제 목표이지요."
김현예 기자 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