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데스크] 나는 '동북 3성'에 산다

서울의 '동북 3성'을 아시는지? 중국의 동북 3성(省)이라면 조선족이 주로 사는 지린성 랴오닝성 헤이룽장성을 일컫는다. 개발이 한창이지만 아직도 중국 내 낙후지역의 대명사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서울 '동북 3성'은 어딘가. 서쪽에 북한산·도봉산,동쪽으론 수락산·불암산에 둘러싸인 말 그대로 '등산 천국'인 곳.물 맑은 계곡 많고,물가 싸고,중랑천변 조깅·자전거도로에다,서울 택시 차고지의 절반이 몰려있어 심야에도 택시 잡기 쉬운 곳.즉,강북·도봉·노원구를 가리킨다.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영문학)가 "물 맑은 수유리에서 살고 싶다"고 했듯이,적어도 기자처럼 이곳에서 오래 둥지를 튼 사람들에겐 꽤나 살 만한 곳이다. 하지만 주위에서 만난 강남 사람들에겐 '동북 3성'이란 어감이 무척 다른가 보다. 늘상 북적대고,개발 더디고,도로는 막히고,학군도 별로인 데다,골프장 멀고,제대로 된 영화관은 3개 구(區) 통틀어 1개 뿐인 곳.투기광풍이 전국을 휘몰아쳐도 무풍지대인,대표적 낙후지역 쯤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하긴 여태껏 투기지역 지정은커녕,후보에도 한 번 못올랐으니 그럴 법도 하다. 서울 25개 구 중 비투기지역은 현재 '동북 3성'과 광진구 성북구 서대문구 등 6곳 뿐이다. 정부가 쏟아낸 무수한 부동산 대책에서도 비켜서 있다. 잠실 주공단지처럼 재건축을 하기엔 덜 낡았고,새로 사기엔 좀 낡았다. 상반기 집값통계에서 강남권이 두 자릿수 상승을 했고 분당·과천은 24%나 뛰었지만 '동북 3성'은 거꾸로 내린 게 이상할 것도 없다. 다주택자 중과세 방침에 집부자들이 전세 끼고 산 이곳 아파트부터 팔자고 내놨을 테니까. '동북 3성'에는 이렇게 시류를 탈 줄 모르는 사람들이 산다. 만원 지하철로 출퇴근하고,구민회관 문화센터 등록하느라 길게 줄 서고,파 한 단 값이라도 깎아 아이들 학원 보내려 애쓰는 사람들이 산다. 구청 재정자립도는 바닥인데 현란한 청사를 짓고,공무원들이 허위로 야근수당 타먹다 들통나도 누구하나 구청장실로 쫓아가 멱살잡이도 못하는 사람들이 산다. 이런 '동북 3성'에서도 가만히 들여다 보면 부동산 문제가 어디서 비롯됐는지 그 일단이 엿보인다. 노원구 중계동 은행사거리 주변 아파트 시세는 웬만한 강남 아파트에 버금간다. 그래서 당현천(溪)을 경계로 북쪽 상계동이 '계북'이고,남쪽 중계동은 '계남'이란다. 심지어 중계동을 '강북의 대치동' 또는 '소치동'이라 부른다. 왜냐고? 새로 널찍하게 지은 아파트와,우수한 고교·학원들이 밀집한 때문이다. 이 지역 아줌마들은 다 아는 얘기인데 정부 당국자들만 모르나 보다. 요즘엔 '동북 3성' 주민들도 솔직히 배가 아팠다. 같은 평형 강남 아파트값이 두 배까진 괜찮았는데 세 배가 되니 살살 아프다가 네 배,다섯 배를 넘으니 다른 나라 얘기처럼 들린다. 정부가 배 아픈 것을 해결해 주길 바라지도 않는다. 배 아픈 것은 참으면 되지만 이렇게 살기 좋은 동네에서 알뜰히 저축하며 열심히 살려는 의지까지 시험하는 세상에는 정말 화가 난다. 오형규 경제부 차장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