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은/삼각산이 일어나 춤이라도 추고/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 날이/이 목숨이 끊기지 전에 와 주기만 하량이면/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종로의 인경(人磬)을 머리로 들이받아 올리오리다.(이하 생략)" 심훈이 쓴 '그 날이 오면'이라는 시(詩)로 이육사의 '절정'과 함께 일제시대의 대표적인 저항시로 꼽힌다. 대한 독립을 위해서라면 이 한몸을 기꺼이 바칠 수 있다는 각오가 행간에 절절이 배어 있다. 뿐만 아니다. 심훈은 여느 작가들과는 달리 스포츠에서도 민족정신을 찾고자 했다. 그가 서거하기 몇달 전,손기정 선수가 베를린올림픽 마라톤대회에서 우승했다는 신문 호외를 받아들고서는 감격한 나머지 그 자리에서 '오오, 조선의 남아여'라는 즉흥시를 써내려 갔다. "오오 나는 외치고 싶다/마이크를 쥐고/전세계의 인류를 향해서 외치고 싶다/인제도 인제도 너희들은 우리를/약한 족속이라고 부를 터이냐"고.억눌린 심정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심훈은 일제의 탄압과 수탈 속에서 주린 배를 움켜쥐고 북간도로 떠나는 식민지 상황을 접하면서 '상록수'와 '탈춤' '영원한 미소' 등 수많은 작품을 발표하고 신문기자 생활도 거친다. 그러나 총독부의 검열로 대부분의 주요 작품이 생전에 빛을 보지 못했다. 빼앗긴 나라의 산하에서 온몸으로 부딪치며 살았던 심훈의 저항정신은 이미 고교시절부터 싹텄다. 경성제일고보(현 경기고) 재학시절 3ㆍ1 독립운동 시위에 앞장섰다가 헌병대에 체포돼 옥고를 치른 것이다. 졸업을 불과 한 달 앞두고서였다. 학교에서는 제적됐고 15회 졸업생의 명부에서도 자동으로 지워졌다. 경기고가 시인이자 소설가이며 영화인으로 활동했던 심훈의 업적을 기려 오늘 명예졸업장을 수여한다. 제적된 지 86년 만이다. '그 날이 오면'하면서 그토록 고대했던 조국에서 게다가 젊은 시절 독립의 꿈을 키워가던 모교에서 뒤늦게나마 졸업장을 받게 되는 저 세상의 심훈의 심정이 어떨까 싶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