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경기 회복기미 안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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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의류 소매상들이 물건을 사러 몰려드는 서울 남대문 시장.장마가 소강상태에 들어간 10일 시장 골목은 손님의 발길이 뜸해 마치 한여름 휴가철 같은 분위기였다.
한·일 관계 악화로 일본인 올빼미 관광객마저 줄어 상인들은 하나같이 "죽을 지경"이라고 입을 모았다.
"경기요? 진짜 좋아졌는지 알고 싶으면 비닐봉투 판매상에게 가보세요." 한 상인의 퉁명스러운 말을 듣고 찾아간 비닐봉투 도매상 이완식씨(51)는 경기가 좋아지고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며 손사래를 쳤다.
남대문 대도상가에서 15년째 비닐봉투를 팔고 있다는 그는 "작년에는 한 달에 280개 정도 나가던 100장 묶음이 지난달에는 겨우 200개 팔리는 데 그쳤다"고 전했다.
도·소매 판매액이 4월 이후 3개월째 증가하는 등 정부 통계상 내수경기지표는 호전 기미를 보이고 있으나 현장의 목소리는 완전히 다르다.
비닐봉투 판매는 물론 음식점 경기를 가늠할 수 있는 물수건과 식자재 판매도 최악이다.
서울 강남 일대 식당에 물수건을 공급하는 김주역씨(48)는 요즘 저녁 배달 업무가 확 줄었다.
그는 "전에는 대부분 식당들이 40개들이 차가운 물수건을 점심과 저녁 때 한 상자씩 주문했으나 요즘은 낮에 배달했던 물건이 저녁까지 그대로 남아 있는 경우가 태반"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고추장 등 식자재 도매업체인 매일유통 주영선 대표(45)는 서울 서초·강남권에만 1000여개의 거래처를 갖고 있다.
주 사장은 "우리 물건을 받는 식당 중 주문량이 늘어난 곳은 1∼2%밖에 안 된다"면서 "6월 한 달간 미수금을 떼인 경우도 4건이나 된다"고 푸념했다.
재래시장 내 은행 지점에는 상인들의 대출금 연체가 늘어나는 반면 일일 입금액은 감소,오히려 불황이 깊어지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이금로 국민은행 신평화시장지점장은 "통계상으로는 도소매 판매가 늘었는지 모르겠지만,현장 상인들의 일일 입금액은 올 설 이후 지속적으로 줄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휴·폐업도 속출해 채권회수팀이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상가 권리금도 떨어지는 추세다.
부동산 정보업체 '부동산114'가 조사한 서울 35개 주요 상권의 평균 권리금은 올 2ㆍ4분기 평당 339만3000원으로 1ㆍ4분기의 358만4000원에 비해 5.32%(19만1000원) 내렸다.
현장 경기가 이처럼 냉랭하지만 봄 기운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소규모 자영업자들이 주로 구입하는 1t 트럭 판매량은 최근 소폭 늘고 있다.
현대자동차에 따르면 올 2·4분기 1t 트럭 판매량(포터·리베로)은 1만7305대로 전년 동기보다 2227대(14.7%) 증가했다.
또 올 상반기 신용판매액은 90조554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78조1610억원에 비해 15.9% 늘었다.
여신금융업협회 관계자는 "전체 소비에서 카드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줄고 있는 데도 신용판매액이 늘어나는 것은 중산층 이상의 소비 심리가 회복되는 신호"라고 해석했다.
이경희 한국창업전략연구소장은 "1t 트럭 판매량은 이동식 점포,전자대리점,가구점 등 자영업 전반의 경기를 예측할 때 주로 참고하는 자료"라면서 "자영업자 자체가 늘어난 데다 업체들도 향후 경기를 좋게 보는 것 같다"고 풀이했다.
차기현 기자 khcha@hankyung.com